미국 추수감사절과 인디언 이야기

미국 추수감사절과

인디언 이야기

매년 11월 넷째 목요일부터 미국의 추수감사절 연휴가 시작되어 매년 4500만 마리의 칠면조가 이날 하루에 소비된다. 미국 전체 인구가 2017년 기준 3억 2천만명 정도이니 4인가족 기준 두가족당 한마리. 

칠면조가 이렇게 수난을 맞게 된 것도 알고 보면 우연(偶然)을 가장한 필연(必然). 1620년 겨울 초기 플리머스(Plymous)에 도착한 필그림은 그 해 겨울을 가까스로 넘기고 그 다음해 봄에 인디언 부족 왐파노아그족(Wampanoag)과 평화 협정을 체결함과 동시에 옥수수 재배법을 배워서 첫 수확을 한다. 그해 가을 풍성한 수확으로 생존에 대한 감사의 축제를 3일동안 열게 되는데 이때 살아남아 있던 필그림 53인과 초청받은 인디언 90명이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인디언은 사슴 5마리를 가져왔고 필그림은 사냥팀이 새사냥을 해서 대접을 하게 되는데 칠면조 외에도 오리, 거위, 비둘기, 백조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비둘기나 오리, 거위에 비해 요리했을 때 볼륨이 있고 여럿이 나누기에 적당했던 것이 칠면조여서 별로 맛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부 지방에서는 칠면조와 옥수수 5개를 함께 식탁에 올리는데 17세기 당시 일인당 하루 옥수수 배급양이 5개였고 힘들었던 그 시절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옥수수 5개를 함께 올린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당시 5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이 따로 있었지 싶다. 인디언이 들고 왔던 사슴도 5마리 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에도 세상 물질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4가지(물, 불, 바람, 흙)가 아니라 5가지(에테르 추가)라고 생각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설을 수용하고 있었던 것 4라는 정수보다는 5라는 소수(prime number)를 기본구성 단위로 선호하는 것은 인지상정. 핵심적이고 본질적이라는 의미의 quintessence가 quint(5)+essence(본질)로 구성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By Nikater,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276243

지금의 매샤추세츠 지역에 매사추세트 인디언이 있었고 바로 그 아래지역에 왐파노아그 인디언이 살고 있었다. 1620년 11월 21일 플리머스에 정착한 필그림 121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지만 그 해 겨울 추위와 배고픔으로 절반정도가 사망한다. 그런 와중인데도 필그림이 토착 인디언들과의 큰 마찰없이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건 형성과 도움이 있었다. 

첫번째,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유럽에서 전파된 전염병 천연두가 인디언 마을을 휩쓴 다음이라 인디언 부족들도 엄청난 인력 손실을 겪고 있었기에 전쟁보다는 평화를 더 바라는 상태였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메이플라워 이전의 선발대가 인디언 무덤을 파서 훔친 옥수수 씨앗이 식민지 플랜테이션의 종자가 되었다는 점. 이런 것을 여건 형성이라고 해야할 지 도움이라고 해야할지... 세번째는 1614년에 노예상인에게 붙잡힌 인디언 스콴토가 영어를 익히고 통역을 할 수 있도록 양성되었다는 점. 이후 옥수수 경작법을 알려주어 필그림의 옥수수 재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무덤에서 훔친 옥수수 씨앗과 스콴토는 옥수수 재배의 결정적인 상관관계를 형성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스콴토는 1622년 천연두로 인해 사망한다. 

정성스레 준비한 미국 가정의 전형적 추수감사절 식탁. 칠면조와 그레이비, 으깬감자, 스터핑(만두 속처럼 얇게 썬 칠면조와 함께 먹음) 크랜베리 소스 등의 요리를 준비한다. 

"The First Thanksgiving at Plymouth" (1914) By Jennie A. Brownscombe

한국의 추석이 조상님께 수확의 감사를 알리는 것처럼 미국의 추수감사절 또한 청교도 혁명을 하던 잉글랜드 전통에서 근거한 것이라고 하는데... 내용을 좀 살펴보면, 그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일년중 147번의 교회가는 날을 정해놓고 교회의 권력아래 사람들을 대가를 치르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이에 영국 국교회가 교회 경축일을 27개로 줄이는 노력을 하지만 보수 복음주의였던 청교도에서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조차도 폐지하려 할만큼 제도가 아닌 복음에 철저하려했다. 청교도의 취지가 하느님의 섭리 행위로 간주되는 사건에 대하여만 금식일이나 감사절로 대체하자는 것이었는데 1621년의 추수감사절도 같은 맥락이었던 것이다.

1번의 사고가 터지기 전에 29번의 작은 사고가 있고
300번의 잠재적 사고가 있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처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토록 운다.
추수감사절의 역사도 돌이켜보면 수많은 소쩍새의 울음이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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