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이름, 데스밸리
이름이 고약해서 그랬는지 미국온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쳐다보지도 않다가 이제야 방문하게 된 곳. 여름에 방문을 하게 되면 이름값을 한다고 하여 바람이 선선한 계절을 택했다. 계곡치고는 인근 공군기지에서 훈련하는 전투기 몇대가 한꺼번에 지나가도 끄덕없을 만큼 넓은 죽음의 땅 데스밸리는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했던 독특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첫번째 방문지 자브리스키 포인트. 예전엔 바다였다가 잠시 호수였던 곳이 이젠 기암괴석이 가득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자브리스키는 퍼시픽 코스트 보락스 컴퍼니의 부사장 이름. 사진 가운데 뾰족한 봉우리가 만리봉(Manly Beacon)이다. 데스밸리 초창기, 생사를 넘나드는 고생을 하면서도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윌리엄 만리(William Lewis Manly)를 추모하여 붙은 이름.
눈 앞에 보이는 해저 융기지형 너머로 보이는 넓디 넓은 벌판이 데스밸리 되시겠다. 사진 왼쪽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스타워즈 촬영지 골든 캐년으로 이어진다. 유명한 운동선수가 물병 하나 달랑들고 내려갔다가 불귀의 객이 된 이후로 여름철엔 1갤론(3.8리터)의 물을 지니고 들어가라는 경고문이 세워진다.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고 얕잡아 보면 큰일난다. 명색(名色)이 데스밸리다.
누군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바닷속 지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재미가 없어도 잠시 지형 공부는 하고 넘어가자. 전체적으로 이곳은 바다였다가 융기가 되었는데 그중 데스밸리 건너편에 보이는 산이 홀스트 지형으로 좀 더 융기된 것이고 데스밸리는 그라벤 지형으로 해발고도보다 85미터 더 낮은 지형이 된다. 이러한 지형에다가 사막기후가 더해져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곳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게 한 것. 한여름 두바이 기온이 섭씨 41~44도 정도이고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이 40~50도 정도라고 하니 최고기록 56도는 상상이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호기심조차 생기지 않는 숫자. ^^
계곡이라고 해놓고 이렇게 넓으면 어쩌자는건가? 곳곳에 용암이 튄 흔적도 보인다.
단테스뷰로 장소를 옮기니 밸리가 시야에 훅~들어온다. 사진의 오른쪽 위 계곡입구에서 Lost 49ers의 주인공 Bennett-Arcan가족의 마차가 들어와서 밸리를 통과하여 산을 넘으려고 하다가 죽을 만큼의 고생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도대체 이들은 왜 죽음의 계곡으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1848년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근처에서 금이 발견되자 1849년부터 너도 나도 금 주우러 가겠다고 캘리포니아로 몰려가는데 이들을 49ers (포티나이너즈)라고 부른다. 그들중의 한 무리인 107대의 마차가 1849년 솔트레이크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로 향하는데 예전 스페인 정복자들이 닦아 놓은 구도로를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지름길로 갈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 이후 각기 나눠져 각자도생(各自圖生). 목적지에 도착해서 각자 살길을 찾아가야지 출발지의 각자도생은 곤란하다. 이들 지름길을 택한 일단의 무리가 데스밸리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도착해야 조금이라도 금을 더 많이 주울 수가 있을테니 급하기도 했지 싶다. 그 당시 알려진 캘리포니아 금은 금광이 아니라 강가에서 발견된 금조각이었다.
바로 이곳 시에라 네바다 산맥 기슭 아메리칸 리버 하류에 있는 수터 목공소(Sutter’s Mill)에서 1948년 1월 24일 제임스 마샬이라는 사람이 강가에서 금덩어리를 발견한다. 그런데 여기서 운이 좋은 것은 제임스 마샬 뿐만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도 함께였다. 다시 말해 제임스 마샬이 금을 주울 때만 해도 이곳은 미국 땅이 아니었고 멕시코 땅이었다. 미국이 살랑살랑 멕시코를 꼬드겨 전쟁을 하고선 종전 선언과 동시에 1848년 2월 2일 괄라루페 히달고 조약을 체결하면서 미국 남서부의 대부분의 땅을 넘겨받아 지금의 미국 본토 국경을 확정한다. 국경을 넓혔으니 사람들을 정착시켜 살게 해야하고 그러려면 기본적인 투자가 들어가야하는데 누가 가라고 떠밀지 않아도 대거 미국 서부로 몰려들어온다. 운수대통이라고 하려면 타이밍이 이정도는 되어야 한다. ^^
공식적으로 미국 땅도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부자가 되겠다고 미국 전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는데 이 때 가장 가까운 멕시코에서 온 사람이 7,000명 정도 되는데 중국에서 온 사람만 60,000명이다. 역시 중국사람이다. 재미있는건 이 당시 금을 주우러 온 사람들은 부자가 된 사람이 아무도 없고 이 사람들을 상대로 비지니스를 한 사람들만 부자가 된다. 웰스 파고 은행이 그랬고 리바이스 청바지가 그랬다. 그 때 몰려왔던 중국사람들이 모여 정착한 곳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이다. 왜 하필 샌프란시스코냐고 물어주시면 고맙다. 그당시 미국 서부해안에 큰 배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는 LA 롱비치,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포틀랜드 이렇게 세군데 밖에 없었고 샌프란시스코가 금이 발견된 곳에서 가장 가깝다.
지름길 경로를 택한 이들도 또 2갈래로 나누어져 진격을 하게 되는데 [1]번 경로를 채택한 이들은 별 무리 없이 이동하여 로스엔젤레스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LA 복귀할 때 이용한 도로와 동일한 경로. 문제는 [2]번 경로. 배드워터 근처에서 마차가 나아갈 수 없게 되자 다시 갈림길로 돌아가 윌리엄 만리와 존 로저스 두사람을 보내서 생필품과 말을 가져오라고 한다. 눈앞에 보이는 산맥이 시에라 네바다 산맥인줄 알고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것. 하지만 이 두사람은 300마일을 거의 한달 동안 걸어서 생필품과 말을 구해서 돌아온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돌아온 만리의 의미를 높이 사서 데스밸리에는 만리 호수(이름뿐이긴 하지만)도 있고 만리봉도 있다. 만리 일행을 기다리던 Bennett-Arcan 가족들은 그 동안 타고 온 말은 고기로 먹었으며 마차는 다 불쏘시개로 썼고 기다리는 동안 사망자도 있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 그래서 나중에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데스밸리를 빠져나가면서 누군가가 외친 말이 “굿바이 데스밸리”. 그래서 이곳의 이름이 데스밸리가 되었다.
단테스 뷰에서 보이는 배드워터는 그다지 악마스럽지는 않다. 저기 아래 보이는 소금밭으로 가보자.
소금밭 입구로 가는 길. 멀리 거대한 절벽이 길을 가로 막고 있는 듯 막막하다.
해수면보다 85.5미터 아래라고 하는데 눈에 보이는 바닥은 그냥 바다 바닥처럼 보인다.
이런 지형을 보고 악마의 골프장을 운운하는데 이런 곳에서 골프를 왜 떠올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들 갈라진 바닷길에서 모세의 기적을 체험하려는 듯 이끌려 들어간다.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 보여주는 풍광이 장관이다. 오전에 들렀던 단테스 뷰 전망대가 저멀리 보이고 바닥에서는 눈길같은 뽀드득거림이 느껴진다.
자브리스키 포인트를 한낮에 구경하는 것은 데스밸리 최고 뷰에 대한 매너가 아니지 싶어 다음날 석양 즈음에 다시 방문하니 그랜드 캐년이 의문의 1패를 당할만 하다고한 까닭을 알겠다. 그랜드 캐년은 자연이 깎아서 만든 절경이고 데스밸리는 자연이 속에 있던 것을 밖으로 낳아서 만든 절경이다.
바다속 지형이라 그런지 해질녘에 더욱 빛을 발한다. 진흙과 토사가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 퇴적암이라 비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에 의한 변화 속도가 빨라 마치 거장의 손길이 스쳐간 듯 수려하다
만리봉 오른편으로 보이는 붉은 성벽 (Red Cathedral)이 저녁 햇살에 발색이 창연(愴然)하다. 참고로 데스밸리에선 해지고 난 이후 매직아워의 붉은 노을같은 이런 감동 따윈 없다. 분지 지형이라 해가 빨리 지고 사막이라 습기가 없어 빛의 굴절을 매개할 수분 덩어리가 없기 때문. 그러다보니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드라이한 저녁 노을을 맞이하게 된다.
봉우리 위에 쵸코 시럽 뿌려놓은 것 같은 모습은 5백만년전 분출했던 용암의 흔적.
한명 정도 걸어가주셔야 그림이 되는데 해가 지니 걸어가는 사람이 없다. 나라도 내려갔어야 하나?
사막에 와보니 없는 것이 많다. 물이 없고 생명이 없다. 있을 땐 여럿이고 없으면 아쉬운 것. 톨스토이가 그토록 목이 터져라 외쳐댔던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 톨스토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의미가 사뭇 심장(深長)하게 다가오는 데스밸리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