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느니 장독을 깬다.

노느니 장독을 깬다(?)

노느니 장독을 깬다는 얘기가 있다. 예전엔 이 말의 의미가 노는 것보다는 장독을 깨는 것이 더 나은 것 정도로 알았다. 장독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니 그런 얼토당토않은 해석이 나온다. 지인께서 알려주시길 원래는 "장독을 부신다" 였는데 여기서 부신다는 씻는다는 의미의 사투리고 그래서 노느니 장독을 닦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어쨌거나 장독은 깨어지면 큰일이다. 

미국은 현재 코로나 비상사태 외부 출입금지. 국립공원 및 휴양지는 전면 폐쇄되어 갈 곳도 없고 갈 수도 없다. 생존에 필요한 사안이 아니면 외출도 금지. 말리부 바닷가에서 홀로 서핑을 즐기던 서퍼가 수갑차고 경찰에 체포되어 가는 것을 언론에서 보도한다. 집에 콕 박혀 있으라 한다.

그러자니 가만히 있으면 오금이 저리는 애들 엄마. 일을 벌린다. 10년 넘게 바깥 바람을 맞으며 그 흔적을 드리운 벤치를 보더니 맘이 짠~ 하다며 팔을 걷어 부치며 간만에 일 한번 해보잔다. 지금까지 이 집으로 이사와서 10년간 집에 못 몇개 박은 게 전부인 나에겐 청천벽력. 걱정이 앞서지만 그렇다고 딱히 도망갈 곳도 없다.

일단 집 뒤에 있는 패티오 가구 리퍼(refurbish)를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집안에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찾아보잔다. 외부 사람 집에 들이는 것도 싫고 코로나가 차지한 바깥 세상엔 나들이를 하여도 즐거울 일도 없다면서…

왼쪽 위의 3가지는 외부에 노출된 창문과 도어용 스테인 페인트, 그 오른쪽은 실내용 가구에 적용할 오동나무 기름, 그 오른쪽은 페인트 칠할 때 커버할 마스킹 테이프. 그리고 시계 방향으로 각종 사포와 가구용 스폰지, 페인터용 만능도구, 그리고 붓들. 일단 이 정도 준비해 놓고 코로나 노가다를 시작한다.

세월에 바랜 가구를 손 보려니 거미줄과 말벌집이 구석구석 한가득이다. 일단 그 놈들부터 정리해야한다. 코로나가 아니면 엄두를 내지도 못할 일이다.

하나 하나 손으로 샌딩하여 칠이 벗겨진 부분을 긁어낸다. 평면이면 기계로 해도 되지만 곡선이 많아서 그 조차 여의치 않다. 나무의 결을 살리고 싶다는 애들 엄마의 의견에 샌딩 머신의 역할은 과감히 축소된다.

한국에서 KF94 마스크가 도착했으니 임시 방편으로 사용했던 수제 면마스크는 작업용 마스크로 둔갑. 대학원 마치고 얼마전 집으로 돌아와 셀프 격리중인 큰애가 찍어준 사진인데 영락없는 이삿집 센터의 해외 노동자 모습.

의자 하나 샌딩하는데 1시간은 걸린다. 큰일이다. 원래 있던 칠을 완전히 벗겨내면 오히려 일이 쉬운데 그건 또 싫으시단다. 기왕에 시작한 것이니 고급스러운 그라데이션( gradation)을 원한다고. 슬픈 일이지만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동나무 기름을 칠하니 나무가 느낌이 살아하는 것이 약간 신기하긴 하다. 예전에는 여성분들 시집갈 때 오동나무 기름을 따로 챙겨서 가져갔다고 하고 오동나무 기름먹은 가구는 벌레가 먹지 않는다고 하니 그 또한 일석이조.

가구가 왜 비싼지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일을 하다보니 저절로 공감이 간다. 얼마전 워렌 버펫의 투자회사 벅셔 헤더웨이에서 RH(Restoration Hardware)라는 토탈 가구 회사에 투자를 했다고 하던데 하필 왜 그 기사가 내 눈에 들어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직 미국 코로나 사태는 수습국면은 아니지만 트럼프는 4월말까지 격리를 마치고 5월 1일부터 비지니스 복귀를 선언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이후에는 각자 알아서 조심하라는 메시지. 그 이후까지 국가에서 격리를 강제하면 또 보상을 해야하는데 이번 한달 Safer At Home을 강제하는데 한화로 2천조 (2조 달러)가 들어갔으니 사람들을 계속 나오지 못하게 할 수도 없는 일이긴 하다.

집 앞에 심어놓은 오렌지 나무에서 열심히 챙겨먹던 다람쥐가 하도 사람들이 없으니 궁금해서 문 앞까지 확인하러 왔다. 사람이 나가지 않으니 동물들이 찾아온다. 미국 어느 시골 마을에는 곰도 궁금하여 찾아온다고 하는데 곰은 사양한다.

일을 하다보니 미국 가정에 이런 식으로 집 수리하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지 싶다. 얼마전 주식 폭락했다던데 홈디포 주식을 사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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