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로 출발 1일차 - 시드니 하버

드디어 기다리던 날이 밝았다. 평소 가고자 했던 곳은 아니었으나 작은 아들 오페라하우스 공연 일정으로 가게 되었으니 그것도 우연을 가장한 필연. 살다보면 참 많이 겪게되는 그 우연이란 이름의 인연... 암튼 이번에는 그래서 그런지 더 반가웠다...

일주일 전부터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여행의 즐거움은 준비를 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짐챙기기는 애들 엄마의 몫이고 나는 아직까지는 카메라만 챙기면 된다. ㅎㅎ 이번에는 과정을 제대로 즐겨보리라 마음먹고 시작부터 즐길 작정이다. 그리고 다녀와서 글쓰기를 이렇게 시작하는 것도 여행을 두배로 즐기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기에 일단 행동에 옮겨본다.

이번 여행의 중요한 즐거움 중의 하나인 사진. 지난번 유럽 여행은 24-105 렌즈 하나로 즐겼는데 실내에서는 조리개값이 아쉬웠고 밖에서는 풍경을 다 담지 못한 화각이 아쉬웠다. 그것도 지나고 보니 그런거고 그땐 물론 몰랐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다. 그 당시만해도 카메라를 자동으로 놓고 찍었으니 DSLR을 들고 다니면서 스마트폰보다 못한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 그 이후 사진을 알게 되고 라이트룸도 배우고 포토샵도 다소나마 만질 수 있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용되었다. 그러는 동안 지름신 강림하사 16-35 와 70-200 그리고 50미리 세가지를 추가로 장만한다. 물론 이번 여행의 동반자다. 16미리 화각이 24미리와는 어떤 차이를 보여줄 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역시 담겨진 풍경의 시원함이 24미리와는 차이가 확연하다. 여행에서 인증샷을 남길때도 배경의 풍부함이 차고 넘친다.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서 50미리와 200미리는 거의 쓸일이 없었다. 50미리는 뮤지엄용으로 딱이다. F1.2의 조리개 값이 플래시를 허용하지 않는 뮤지엄에서는 진가를 발휘하는데 이 대목에서 갑자기 아인슈타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람은 누구나 천재라고. 나무를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하지 말라고... 그래서 50미리는 뮤지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풍경 사진은 설자리가 없는 것 아닌가 싶다. 맹상군이 닭소리를 내는 식객덕분에 목숨을 구했던 것처럼 여행지가 파리나 이태리라면 50미리는 귀한 대접을 받는 필수품이 될 거다. 저 무거운 200미리도 이번 여행에서 거의 쓸일이 없었는데, 200을 꺼내기엔 시드니 하버의 수평선이 너무나도 넓고 대지는 광활했던 것. 다행히 챙겨간 삼각대는 야경을 담아오는데 일조를 했으니 짐값은 했다. 

2일전에 공연 준비하느라 작은 아들은 먼저 출발했고 나머지 세 식구는 오늘 출발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또 다시 이동해야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이번에는 우버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돌아오는 날 15시간의 비행후 도착했을때 피곤함에 운전을 해야하는 것도 원치않았던 것이 더 크게 작용했다. 

LA공항 델타항공 청사.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공항마다 항공사가 별도 청사를 운영하고 있다. 서둘러 출발해서 막상 도착하니 출발하기까지 3시간 반 정도 남았으니 시간이 넉넉하다. 예전에는 출발 2시간전에 딱 맞춰서 도착하는 일정으로 다녔는데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길이 막혀 허겁지겁 게이트로 직행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건 마치 여행을 하는게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이나 숙제를 하는 것 같았기에 이제는 여유있게 도착을 하고 공항을 즐기려 한다. ㅎㅎ 

밥 때가 되어 밥을 먹고 여행 프로그램 한편보면서 동기감응? 이라고 요란을 떤다. 기내에서의 시간도 여행의 일부분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니 목베게와 다운받은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노트북 그리고 책 한권이 이번 기내 여행의 도구로 당첨되었다. 시드니까지 비행시간만 15시간. 그 돈을 들여서 그 시간을 지겹게 보낸다면 그 또한 후회할 일.

하지만 계획대로 정한대로 된다면 누가 뭐라 하겠냐만.... 그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 좌석아래에 설치된 파워포트가 고장이고 독서등도 고장이다. 헐~~ 책을 읽을 수도 노트북을 볼 수도 없다. 대략난감... 이쯤되면 기내여행 도구(道具)를 잘못 선정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데 디지털 한가지에 아날로그 두가지. 15시간을 버티는 밧데리를 들고 다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 이쯤되면 빨리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지 않고 승무원에게 화부터 낸다면 그걸로 여행은 시작부터 악화일로(惡化一路) 하책중의 하책. 큰 아들 녀석이 얘기를 한번 해본다고 하더니 승무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객실 전원상태를 리셋해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것도 세번씩이나... 그랬더니 승무원이 미안한 나머지 델타 여행 바우처를 세장을 주겠다고 제안을 해서 못이기는 척 받아들인다.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받으면 허탈한 마음을 채울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열부터 낼일은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독서등이 고장나 있었다... 물론 올때도 바우처를 받았는데 비행기 여행할 때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유일하게 소용(所用)이 남은 여행 도구인 목베게를 벗삼아 15시간을... ㅎㅎ 더군다나 비행기에서 3끼를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 IATA(국제항공운송협회) 비행규정이 18시간이라 그 이상이 되면 승무원을 교대해야한다. 도데체 얼마나 긴 장거리 구간이 있는지 알아보니 LA~싱가폴 구간이 현재는 논스탑이 없는데 올 가을(2017)에 새로운 비행기 투입하여 17시간 40분에 직항 노선을 운항하려고 한다고 하고 싱가폴항공에서는 2년뒤 싱가폴 뉴욕 구간을 19시간으로 직항노선을 다시 운항할 거라고 하니 이 분야에서의 경쟁도 만만치 않다. 어찌되었건 시간은 흐르고 비행기는 쉼없이 날아서 일출로 붉게 물든 노을과 함께 장관을 보이며 저만치서 육지가 나타난다. 가끔은 육지가 반가운 경우가 있기도 하더라는...

이곳은 남반구라 초겨울로 진입하는 계절이었는데 날씨는 그야말로 화창이다. 이태리 베니스 느낌이 살짝 나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과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베니스보다는 많이 깨끗하다... ㅎㅎ 이제 저 하버브릿지로 올라가서 시드니 전경을 즐길 때가 되었다. 


하버 브릿지로 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더락스라는 장터. 벼룩시장 비슷한데 특이한 물건들이 있으나 가격이 착하지는 않다는 단점이 있으니 구경만으로 족하다. ㅎㅎ

이 계단 위가 하버 브릿지. 계단에도 디테일과 운치가 살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디테일에 감동받는 것은 그것이 매번 부족하다고 느끼는 2%를 채워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드디어 하버 브릿지에 올라왔다. 짐은 맡겨도 렌즈와 노트북은 맡길 수 없어서 9.6키로의 카메라 가방을 계속 짊어지고 다녔더니 어깨가 뻐근하다. 일찍 체크인 할 수 있다고 연락을 받지 않았으면 아무래도 몸살이 낫지 싶다. 누가 시켜서 저 무게를 계속 감당해야했다면 엄청 원망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쪽 어깨만으로 저 무게를 앞으로도 계속 감당하는 건 무리가 있지 싶어 다음 여행에는 백팩용 카메라 가방을 마련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ㅎㅎ 


세계 3 대 미항중의 하나라는 시드니 하버의 모습. 참으로 시원하다. 강희제가 태산에 올라 한말이 떠오른다. 과연(果然)...  하늘색과 바다색이 다르지 않은데 나중에 오페라 하우스 이야기 할때 나오겠지만 이 부분도 오페라 하우스 디자인의 단초를 제공했지 싶다.

문득 강희제가 오래 살았다고 들은 기억이 나서 도데체 언제 태산에 올랐는지 궁금하여 찾아보니 1654년 갑오생. 갑오년에 태산에 올라갔다니 환갑 기념 등반이었나 보다. 보통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황제가 그나이에 태산을 오르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체력 관리를 엄청 잘 한 분이지 싶다. 하기사 그 손자 건륭제는 89세까지 살았으니 유전의 힘은 무섭다.  

도착하자마 아침 먹고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셨지 싶다. 북쪽바다를 보고 있는데 남쪽바다를 보고 있는것 같고 그림자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드리워져있다. 사진은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서 찍은 것이니 당연히 태양은 동쪽에서 뜨기는 한다. ㅎㅎ 남반구에 온 걸 깜빡했다는 얘긴데 계절만 반대가 아니라 태양도 반대다. 남반구에선 남향 남대문이 아무 소용없는 얘기고 이기풍수는 이곳에서 헷갈려도 한참을 헷갈리지 싶다. 그래도 느낌이 살지 않는 분을 위하여 사진 한장 더.


오후 1시 8분 정북을 태양이 지나가고 있고 하지(6월 21일)를 얼마전에 지나왔으니 태양이 아직 북회귀선 근처에서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드니 낮 1시의 그림자가 이리도 길다. 비행기를 타고 올 때까지만해도 남쪽으로 이동중이었으니 이동방향의 왼편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는데 도착해서 사진을 찍을때 태양이 오른쪽에서 출몰하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는... 

하버브릿지에서 시드니 하버의 절정을 감상하고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다시 호텔 뒤쪽에 있는 보태닉 가든으로 이동. 입장료가 무료이니 부담이 없다... ㅎㅎ 식물원이라고 하면서 나무는 엄청 듬성듬성…여백의 미가 살아 있다고 해두자. 호주의 밀림을 보고오니 여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곳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던거라는 걸 알겠다. 

호텔 뒤쪽 보태닉 가든에서 돌아오면 오페라 하우스쪽으로 연결된 해안 산책로가 있다. 그 길을 돌아오니 해가 서쪽으로 뉘엇뉘엇 들어가는 것이 낮게 지는 석양으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화가의 붓질같다. 


미국 관광지가 텅~비었다고 하더니... 이사람들 다 여기와있나 보다. 지금 저기 보이는 사람들의 절반이상이 중국사람들이고 그것도 단체로 오신 분들이다. 하기사 가족이 왔는데 10명은 기본이었으니 가족 단체라고 해도 되겠다. ㅎㅎ

삼각대를 준비하지 않았는데 눈앞에 노을이 나타난다. 원래 노을을 담을 일정은 내일이었는데 말이다. 지나고 보니 그 다음날은 다른 일정때문에 노을을 담지 못했다. 여행에서 원래란 없는 법인가보다. 일단 담아야했기에 조리개 활짝열고 1.3초 개방해서 이정도 얻었으니 다행이다. 붉은 노을은 이번 여행의 첫 선물. 시드니를 출발하는 날은 비가 왔으니 말이다. 시드니의 노을을 렌즈에 담을 수 있어 행복하다. 

시드니는 낮도 밤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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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2일차 - 시드니 타워와 오페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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