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빙하 이야기

알래스카 빙하 이야기

회색고래, 허스키 그리고 빙하

빙하와 회색 고래의 고향.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에 매입한 노다지, 자원의 보고(寶庫). 지금 화폐가치로 환산해도 한화로 1조 9천억원 정도. 2018년 대한민국 예산이 429조니까 이틀치 예산도 되지 않는 금액. 크림전쟁 패배의 여파로 자금난에 허덕이던 러시아 제국은 알래스카마저 영국한테 빼앗기게 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협상을 한달도 하지 않고 서둘러 조약을 체결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에서는 비싼 돈을 주고 쓸데 없는 땅을 샀다고 비난하는 여론이 팽배했다는 것. 그러고보면 여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옳고 그름은 오랜세월이 지나면 자연(自然) 알게 될 것이니 말이다.

캐나다 뱅쿠버를 출발하여 알래스카 앵커리지까지의 여정. 2006년에 다녀온 일정이니까 벌써 13년전 이야기. 오래된 사진첩을 뒤적거리니 그 오래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사진의 또 다른 힘을 느껴본다.

이동하는 동선을 지도로 살피다보니 국경선이 어째 좀 이상하다. 알래스카 위쪽은 북쪽에서부터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직선으로 깔끔한데 해안선은 어찌된 영문인지 꾸불꾸불. 게다가 캐나다 영토에서 바다로 접근하는 것이 한참 내려와서야 가능하고 알래스카 땅이 해안선을 따라 계속 이어져있다.

By William R. Shepherd,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2868658

뭔가 사연이 있지 싶어 구글을 뒤져보니 역시… 지리와 역사가 동시에 깔끔하게 정리된 지도를 찾았다.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한 것은 1867년 3월 30일. 캐나다가 영국과 프랑스의 점령지를 넘겨받아서 정식 국가 수립을 한 것이 1867년 7월 1일. 그러니까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할 때 캐나다라는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캐나다 입장에서 보면 딱 3개월 차이로 저 엄청난 면적의 해안선을 확보하지 못하고 내륙으로 물러나게 된거다. 겨울이 긴 나라는 해안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러시아가 러일 전쟁에서 일본함대한테 박살이 난 이유가 결코 러시아 함대가 약해서가 아니다. 주력부대인 유럽의 발틱함대가 발트해에서 출발하여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1차 함대는 수에즈 운하 통과 못함) 220일이 걸려서 도착하니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 대한해협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본함대에 박살이 난 것. 10월에 출발해서 이듬해 5월까지 겨울과 봄을 바다에서 보낸 상태라면 제 아무리 발틱함대라고하더라도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는 전쟁. 겨울나라에게는 그만큼 부동항(不凍港)은 의미가 크다.  

알래스카 국경도 캐나다에겐 마찬가지. 처음엔 러시아와 영국이 국경 분쟁을 했고,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분쟁권을 넘겨받아 미국과 영국이 분쟁하다가 3개월 뒤에 미국과 캐나다의 분쟁으로 바뀐다. 그 과정에 영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슬쩍 미국편을 든다. 영국령이었던 땅을 캐나다에 내어준 상황이었으니 캐나다보다는 미국편을 드는 것이 낫다는 계산이었을거다. 그렇게 국경분쟁은 36년을 실강이하다가 1903년에 최종 마무리되면서 노란색 경계선이 국경으로 확정 되는데 그 때문인지 캐나다인들 마음속에는 영국이 미국보다 더 얄미운 나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뱅쿠버 출발. 바다쪽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해상 경계선을 벗어나게 되는데, 그 순간부터 법적으로 치외법권지역이다. 해상 치외법권… 요놈이 참 재미있는 것이 공해상 배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합법 불법의 개념이 애매하다. 불법행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색하거나 범인을 체포할 수도 없다. 그래서 배가 출발하기전에 검색하고 이상 여부를 챙기고 도착후 다시 챙기는 것. 출발과 도착사이에 이상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해상에서의 모든 일들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다. 유럽이나 미국 상류사회의 애매한 (육지에선 불법인) 취미 활동에 배가 많이 이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많은 요트들이 그저 이동이나 낚시 등 레져 목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알고 보면 요트가 달리 보인다. ^^

큰 바다로 나가니 회색고래 가족이 반갑게 맞이한다. 일명 귀신고래. 물위로 고개를 들고 있다가도 귀신같이 사라진다고 하여 뱃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이 고래들은 알래스카에서 출발하여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로 갔다가 다시 알래스카로 돌아오는 장장 6,000마일 (약 9,656킬로)의 여정을 짝짓기와 번식을 위해 매년 왕복한다. 로스엔젤레스 근처 롱비치 항구에서 배를 타고 봤던 그 녀석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웬지 반갑다. 

구글 이미지. maybe subject to copyright.

혹등고래라고도 불리는데 머리와 등 부위에 혹이 많아서 그리 불린다. 몸무게가 30톤이 넘으니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큰 포유동물이다. 알래스카에서는 이렇게 물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멕시코까지 내려갔다 왔으니 이래 저래 이놈들도 힘들거다. ^^ 또 한가지, 대서양에서는 혹등고래를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하는데 로마시대 유적지에서 혹등고래 뼈가 발굴되었다고 하니 기원전부터 포경을 해서 이미 다 잡아 먹었다는 이야기? 아무튼 고래는 더 이상 잡지 않아야하는데 여전히 일본이 문제다. 그리고 일본 따라 상업포경 허용을 주장하는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까지… 암튼 난 반댈세.^^

중간 정박지에서 눈덮힌 알래스카 산속으로 들어가니 허스키를 키우고 있다. 시베리아 허스키는 아니고 시베리아 허스키와 알래스카 말라뮤트의 혼종인 알래스카 허스키인데 정식 품종으로 인정 받고 있지는 않다. 가끔 시베리아 허스키를 캘리포니아에서 키우는 분들도 계신데 캘리포니아 날씨는 허스키에겐 거의 학대 수준. 추운날씨에 적응하느라 피하지방이 엄청 발달해 있고 털도 2중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우나탕에서 오리털 파카 뒤집어쓴 것과 다름없다. 동물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추운 지방으로 이사를 가시거나 허스키를 보내주시거나…^^

원래 알래스카산 품종으로 말라뮤트라는 것이 있는데 생김새는 허스키와 비슷한데 덩치가 좀 더 크고 눈빛은 밝은 브라운색이다. 큰 덩치덕에 개썰매를 끄는데 4~6마리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허스키는 10마리가 끌어도 웬지 힘들어 보이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허스키의 파란 눈빛은 강렬하다 못해 섬뜩하다. 어린 강아지가 이정도이니 큰 놈들은 쳐다보기도 부담스럽다. 참고로 파란색의 눈은 유전적으로 열성이라 햇빛을 많이 보게 되면 눈이 상하게 되어 시력을 쉽게 잃을 수 있다고 한다.

영국 사우스햄튼을 떠나는 타이타닉의 한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타이타닉은 대서양이고 이곳은 태평양. 

9만톤급 규모로 프랑스 샤티에 아틀란티크(Chantiers de I'Atlantique) 조선소에서 건조했다. 샤티에 아틀란티크는 한때 한국의 STX가 인수하여 STX 유럽으로 불린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STX의 파산으로 이탈리아 핀칸티에리(Fincantieri)에서 50%의 지분을 인수하여 다시 샤티에 아틀란티크로 이름이 바뀌고… 이런 종류의 배는 주로 프랑스 샤티에 아틀란티크와 이태리 핀칸티에리 그리고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 등이 세계 시장을 나눠갖고 있다고하니 STX의 파산이 더 아쉽다.

오랜 세월 쌓인 눈이 압력을 받아서 얼음이 되어  층층이 형성된 빙하(氷河, Glacier, 만년설이라고도 함). 그래서 원래 빙하는 자체 무게 때문에 끊임없이 움직인다. 다만 지구 온난화로 그 움직임이 좀 많아진 것이 문제. 빙하중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빙산(Iceberg)이고 빙하중에서도 5만 평방킬로미터 이상의 크기는 빙상(Ice Sheet)이라고 부르는데, 5만 평방킬로면 남한 면적의 절반 정도 크기. 빙상은 남극대륙, 그린랜드, 아이슬란드 등지에서 볼 수 있다. 또 빙붕(Ice Shelf)은 남극대륙과 이어져 바다에 떠있는 300~900 미터 두께의 얼음 덩어리다. 참고로 남극은 대륙이 있지만 북극에는 대륙이 없다. 북극은 바다위에 떠 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일 뿐 땅이 없다.

빙하(氷河)의 한자가 왜 얼음강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막상 녹아서 얼마남지 않은 빙하를 보니 지구 온난화가 좀 걱정이 되긴 한다. 저만큼의 빙하가 녹았으니 해수면이 엄청 상승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물위에 떠 있는 빙하나 빙산은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부피의 차이에 의한 형태의 변경일 뿐 질량의 차이는 없단다. 그래서 북극은 대륙이 없이 얼음이 바다에 떠있는 형태이므로 해수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문제는 남극이다. 대륙으로 형성되어 있고 대륙위에 있던 얼음이 녹게 되어 그만큼 고스란히 해수면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 실제 호주 해수면 상승속도가 전세계 평균의 2배라고 하고 거기다가 빙하가 녹아서 빛반사의 부족으로 해수의 열팽창이 발생하여 해수면이 상승하니 엎친데 덮친다. 

구글 이미지 maybe subject to copyright.

최근 베니스에서의 바닷물 범람은 한때의 해프닝이 아니다. 과학자들의 경고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고 노스트라다무스가 본 것이 헛 것이 아니니 그것도 큰일.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뭐든 해야한다. ^^

허버드 빙하 (Hubbard Glacier). 저 뒤로 122킬로의 빙하길이 이어져있다. 파란 유리창을 통해서 찍은 사진을 포토샵으로 색을 지우고 복원해 봤다. 이 사진이야말로 빙산의 일각. 인터넷에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찾아보자.

by Kowloonese; 07:54, 24 August 2005

규모가 엄청나다. 저 큰 배가 여기선 일엽편주(一葉片舟)... 그래서 그랬는지 보통 처음 발견한 사람이나 팀의 이름을 따서 네이밍을 하는데 허버드는 그저 내셔날 지오그래픽 초대 회장을 지낸 사람의 이름이다. 그런데 아마도 발견 비슷한 과정없이 그냥 자신의 권위로 이름을 붙여버린 것 같다. 지도책에 아무런 이름이 없다면 먼저 붙이는 사람이 임자이긴 하다. ㅎㅎ

컬리지 피오르드 (College Fjord)의 하바드 빙하(Harvard Glacier). 허버드에 비하면 아담하다. 피오르드는 빙하로 침식된 좁고 긴 지형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생긴 좁은 만을 뜻한다. 노르웨이나 아이슬란드 쪽에 피오르드 지형이 많다.

언젠가는 파노라마로 이어 붙일 수 있을거라 믿고 3장을 찍었는데 14년이 지나서 붙여보니 역시 붙인 티가 난다. 그 당시엔 노출 고정의 개념도 몰랐으니 14년이 지나서 이 정도 사진을 얻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작지만 빙산이다. 타이타닉도 저런 놈한테 당했다. 빙산은 얼음의 밀도(920 kg/m3)와 해수 밀도(1,025 kg/m3)의 차이로 얼음이 물에 뜨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전체 크기의 10% 정도인데 물 위로 떠 있는 부분은  920/1,025= 0.898 , 1-0.898=0.102  정확히 이야기하면 10.2%가 물위에 뜨는 부분이다. 아르키메데스 원리에 따른 계산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것이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 참조하시길...

http://kowon.dongseo.ac.kr/~seewhy/Science/Iceberg.htm

앵커리지 전경. 구글 이미지. maybe subject to copyright.

위티어에 도착하여 앵커리지로 이동하면서 일정이 마무리된다. 앵커리지는 인천~뉴욕 구간을 대한항공에서 북극항로를 이용하던 시절에 공항에서 몇번 머문적이 있지만 앵커리지에 발을 디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앵커리지라는 이름을 들으면 여기엔 정착해서 사는 사람이 없을 것만 같다. 말이 씨가 되고, 언어는 사람의 미래가 되고, 노래 제목은 가수의 미래가 된다. 앵커리지는 이름이 정박지라서 비행기도 배도 정박만하고 다들 그냥 간다. 사람들이 와서 정착하기를 원한다면 도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어떨까 싶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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