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부여행 (르네상스 종결자 미켈란젤로)

새벽 4시 시차의 짤없음을 몸으로 느끼며 눈을 뜬다. 잠시 뒤척이다 이내 받아들이고 챙겨주는 아침 먹고 (그 시간에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이 없기도 하거니와 아침 챙기고 준비해서 함께 길을 나선 애들엄마가 고맙다) 일교차가 심한 새벽이라 따뜻한 옷도 챙겨야 한다. #미켈란젤로광장 에서의 일출을 맞으러 출발.

가는 길목에 있어 들린 #시뇨리아광장. 평소엔 붐비는 인파로 인해 제대로 감상을 하기도 어렵지만 지금 이시간은 여유롭다. 베키오 궁전 입구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와 헤라클레스와 카쿠스 조각상.

다비드상은 완성된 후 400년간 이곳에 전시되었는데 작품에 파손이 발생하여 아카데미아로 옮겼고 지금 이곳은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다. 원본과 크기가 같은 줄 알았더니 다르다고 한다. 5미터가 넘는 통대리석을 구하는 것이 가뭄에 콩나듯 한다고 하니 이래저래 다비드상은 귀함을 타고 났다. 그래서 미켈란젤로 광장의 다비드는 아예 시작부터 청동조각으로 제작한다. 오른편의 헤라클래스도 최초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하여 다비드와 나란히 전시하려고 하였으나 일정이 여의치 않아 비치오 반디넬리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

시뇨리아 광장 한켠에 #로자데이란치 라고 부르는 회랑이 있다. 이름이 있으면 불러줘야한다. 그래야 그 다음 이야기가 나오니깐. 이걸 그냥 어느 회랑이라고 해버리면 부르는 사람은 편하지만 상대방은 억울하고 시간이 지나면 불편하니 제대로 불러주자. 로자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 여기서 로자는 지붕이 있고 벽면이 없는 건축양식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란치는 독일용병을 뜻하는 단어. 메디치가 코지모 1세의 개인용병들이 대기하던 장소로 쓰이다가 그 이후 광장에서 행사가 있을때 VIP들의 대기장소로 쓰였고 지금은 회랑으로 작품 전시를 하고 있다.

벤베누토 첼리니의 #메두사 의 머리를 벤 페르세우스라는 작품. 재미있는 건 페르세우스는 발 아래를 보고 있지만 메두사의 머리는 앞쪽에 있는 포세이돈, 즉 넵튠을 보고 있다는 것. 아테네의 구애를 포세이돈이 여러차례 거절하자 빡친 아테네가 포세이돈과 열애중이던 메두사를 괴물로 만들어버렸고 페르세우스를 이용하여 메두사의 목을 잘라버린다. 그럼 메두사는 포세이돈을 보고 있는데 포세이돈은 어쩌고 있는지 한번 보자.

마침 시뇨리아 광장에 포세이돈 조각상이 있다. 포즈를 보니 메두사를 바라보는 포세이돈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이쯤되면 짜고 치는 고스톱에 각본 없는 드라마가 따로 없다.

지암 볼로냐의 #사비니 여인의 납치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의 석고본이 아카데미아에 소장되어 있고 전시된 이 작품이 진품이다. 그래서 작품은 보관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이 중요한것. 보통의 조각가들은 작품을 만들기전에 석고본을 만들고나서 석고본을 보고 조각을 한다고 하는데 미켈란젤로는 석고본을 만든적이 단 한번도 없다. 다비드를 조각할 때도 2년넘게 컨셉구상만 하다가 8개월동안 바로 조각에 들어갔다고 하니 조각에는 타고난 사람. 어려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는 일을 해야해서 유모집에 맡겨진 적이 있었는데 유모집이 석공이어서 어릴때부터 망치와 끌을 갖고 다녔다는 얘기가 있으니 어릴적 환경이 소질의 개발과 발전의 방향에 영향이 크다는 걸 또 한번 확인한다.

이 작품은 로마 건국신화에 나오는 #로물루스 (그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고 이름지음) 이야기인데 로물루스가 하늘에서 목동 3000명을 데리고 내려와 로마에 정착을 하게 되는데 농사를 지을 인구가 없어 이웃 사비나 부족에게 여자를 보내달라고 하지만 여러차례 거절당하자 아예 사비나 부족 전체를 축제에 초대하여 남자들을 만취하게 만들고 여자들을 겁탈하여 가정을 꾸리게 된다는 이야기. 대리석 조각 하나로 만든 것이며 제일 위의 여자는 딸 혹은 며느리의 ‘어찌하오리까’ 표정이고 제일 아래 남자는 아버지 혹은 시아버지의 ‘그러게나 말이다’ 표정이라고 하는데 웃자고 하는 얘기일 듯.

기원전 3세기경의 헬레니즘 조각상인데 로마시대에 복제품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져있다. 작품의 이름은 #파트로클루스 의 시신을 되찾아오는 #메넬라오스. 메넬라오스는 스파르타의 왕인데 트로이의 전쟁때 #아킬레우스 가 자신의 상관 아가멤놈과의 갈등으로 전투를 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리스 연합군은 연전연패를 하게 된다. 그러자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루스가 아칼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나가 트로이의 #헥토르 한테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에 분노 게이지 상승한 아킬레우스 덕분에 전쟁의 양상은 180도 바뀌게 되는 이야기. 작품 하나로 그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그래서 문사철(文史哲) 시서화(詩書畵)라고 하면서 화(畵)를 제일 마지막에 넣었나보다. 오죽하면 그림이 최고의 표현이냐 조각이 최고의 표현이냐를 놓고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경합을 했을까 싶기도. 어쩌다보니 시서(詩書)는 의문의 1패 ? ㅋㅋ

시뇨리아 광장에서 강변으로 곧장 내려와 다리를 건너 미켈란젤로 광장까지는 걸어서 30분. 1865년부터 1870년까지 5년간 피렌체가 이탈리아의 수도가 된 적이 있는데 이때 시작된 피렌체 도시 개발 사업으로 조성된 #룽가르노 (Lungarno, 강변길)가 바로 이곳. 왼쪽으로 보이는 나무숲도 그때 조성되었다.

동쪽 하늘의 먼동과 수은등의 색파장이 비슷한 시각이라 은근 잘 어울리는 아침풍경을 보여준다. 고맙구로…^^

아침부터 구글맵이 열일하고 있다. 가끔 건물사이에 들어가면 시그날을 놓쳐서 빙빙 돌기도 하니까 수시로 이정표 확인을 하는 것을 잊지 말자. 길가다가 앞쪽으로 성벽이 나타나면 제대로 길을 가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

성벽을 지나면 오르기 편안해 보이는 계단이 눈앞에 펼쳐진다. 말을 타고 올라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계단의 세로 폭이 길게 만들었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계단의 가로폭이 넓어지는 로마 캄피톨리오 광장의 계단과는 그런면에서 다르다.

넓게 펼쳐진 오르막 평지 계단을 올라오니 꽃의 도시답게 광장입구에서 꽃과 나무들이 반긴다. 지금은 가을이라 꽃이 빈약하지만 봄부터 여름까진 활짝핀 꽃으로 풍성한 맞이를 기대해도 되지 싶다. 먼동의 붉으스름과 먼산의 푸르스름과 건물벽의 노르스름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한다. 아침 햇살을 머금은 도시를 담느라 바쁘다. 주어진 시간은 잔여 15분. ^^ 지금부턴 셔터에 불이 난다.

아무리 바빠도 뜨는 해는 챙겨야한다. 운이 좋아 다비드와 아침 햇살이 #황금분할 선상에 놓였다. 수지 맞은 아침이다.

그나저나 다비드 얼굴이 이게 뭔가? 그리고 피부는 또 어떻고… 아무리 청동이라지만 디테일은 사라졌고 분위기는 깬다. 거기다가 뭔가 광장의 구성이 허술한 느낌마저 드는 것은 메디치의 피렌체가 아니다. 배고픈 것하고 궁금한 건 참기 힘들다고 했던가. 요즘은 구글이 하도 똑똑해져서 한걸음만 더 들어가면 웬만하면 나오니까 한번 또 찾아보자.

조금전 광장으로 올라오기전에 보았던 룽가르노(강변도로) 조성할때 이곳 미켈란젤로 광장도 수도 개발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피렌체 시내에 있는 미술품을 이곳에 다 모아서 명실상부한 야외 전시실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고, 일단 다비드부터 설치를 하는데 그때가 1869년. 그런데 돌연 이듬해 로마의 이탈리아 환원문제가 해결되면서 이탈리아 수도가 로마로 바뀐다. 그러면서 예산도 없어지고 명분도 사라지니 광장도 다비드상 하나 덜렁 남겨놓고 미켈란젤로 광장이라 이름붙인 후 지금까지 오게 된 것. 하지만 저녁 노을을 즐기려는 인파에겐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하여 피렌체 최고의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끝날 때까진 끝난게 아니니 함부로 평가하지 말자. ㅋㅋ

아침 먼동에 햇살받은 #폰테베키오 다리 풍경이 따사롭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조토의 종탑이 아침햇살에 발그레하다. 그 왼쪽으로 베키오 궁이 보인다. 30초 간격인데 반사되는 각도에 따라 빛의 발색이 다르다.

70미리 렌즈를 세로로 4장을 찍어서 파노라마로 합성하여 만들어본 사진. 삼각대가 없어도 노출 고정만 잘하면 똑똑한 포토샵 덕분에 파노라마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역시 안해봐서 모르는 것이지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파노라마 포토스팟 찾으러 다니다가 건진 꽃의 도시 피렌체다운 모습. 그려~ 역시 꽃이 있어야 피렌체여.

이젠 진품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유로 자전거나라에선 투어 가이드 상품이 없어 구하지 못했으나 #에어비앤비 에서 Skip the line (합법적 새치기)을 판매하기에 예약을 했다. 가격도 좋고 설명도 좋다. 단지 문제라면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을 하니 이게 문제다. 미국에서 영어로 역사를 배우지 않았으니 한국어 가이드보단 느낌이 멀다. ㅋㅋ 나중에 알아보니 단체 관광객 투어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스킵더라인이다. 몇푼 되지 않는 돈에 몇시간씩 줄을 서서 황금같은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라.

정면에서 바라본 다비드는 역시 큰 머리에 숏다리. 애당초 계획은 두오모 성당 돔 상부에 설치할 예정이었고 미켈란젤로는 의뢰한대로 정확히 만들었다. 그러니 대두와 숏다리는 미켈란젤로 잘못이 아니다. 더군다나 미켈란젤로는 근육과 힘줄의 디테일 뿐만아니라 짝다리 뒷대의 엉덩이 접힌 부분까지 리얼하게 묘사를 했다. 그 꼭대기에 있으면 누가 본다고… 본인에게 작업이 맡겨지기전에 이미 몇명의 조각가가 손대다가 실패한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를 받아들고는 3년에 걸쳐서 29살에 이작품을 완성한다. 컨셉에 대한 고민을 2년 넘게 했다고 하니 그 고민이 어떠했을까 싶다.. 컨셉을 다비드로 결정하고 기존의 골리앗을 무너뜨린 승리의 다비드와는 달리 돌팔매를 던지기 직전의 사뭇 긴장된 표정의 다비드로 선택을 한 이유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눈은 무언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그 사연이 궁금하여 또한번 찾아본다.

때는 바야흐로 메디치 전성시대. 로렌초 데 메디치의 총애를 받고 인문학 수업과 회화 조각등의 미술수업까지 받으면서 로렌초의 양자로 입양까지 되는 미켈란젤로. 잘 나갈 듯 보였으나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상태에서 감자기 로렌초 데 메디치가 사망하는데 뒤를 이은 로렌초의 장남 피에로는 인문학이고 예술이고 아무런 식견이 없는 개망나니. 오죽하면 눈오는 날 미켈란젤로한테 커다란 눈사람을 한번 만들어보라고 했을 정도라고. 로마로 도망갔다가 피렌체 공화정 수립후 피렌체로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쫓겨난 피에로 데 메디치가 다시 피렌체로 쳐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이를 경계하라는 의미로 긴장된 자세를 취하고 로마를 바라보고 있는 눈빛을 넣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피에로는 교황에게 군대를 얻어서 피렌체로 쳐들어 왔고 후에 메디치가문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아카데미아에 들어서면 다비드 상에 가기전에 양 옆으로 미완성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완성 작품이지만 대리석의 품질은 다비드 것보다 더 좋다는 것. 품질 좋은 대리석은 세월이 지나도 완성하지 않고 내버려 두고 품질 떨어지는 큰 대리석은 3년간 머리 싸매고 완성하고 만다. 미켈란젤로의 그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ㅎㅎ

“나는 대리석에서 천사를 보았고 내가 그를 자유롭게 할 때까지 조각했다”

돔에 올렸을때를 가정하여 아래에서 쳐다봤을 때의 모습. 역시 얼짱 몸짱은 각도가 따로 있다. 비율이 믓찌다.

아카데미아를 나오니 바깥에서 기다리는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이들이 입장할때까지 2시간은 족히 걸리지 싶다. 내부 정원이 정해져있어서 입장한 손님들이 나와야 그만큼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 그래서 가이드가 있는 그룹투어한테 별도 라인으로 입장을 시켜주는 것이다. 이제 다비드를 세우려했던 두오모 돔으로 올라가보자.

쿠폴라 입장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입구 장식 조각상도 예술. ^^

92미터 높이 463계단의 첫발. 성당의 두오모 꼭대기를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설계 단계부터 만들어 놓은 브루넬레스키도 대단하고 관광객들이 올라갈 수 있게 허용하는 성당도 대단하다.

#조지오바사리 가 그린 최후의 심판. 두오모 돔의 천장화. 돔이 시작되기전 여유를 갖고 즐겨보자.

돔으로 올라가는 막바지 계단.

돔의 숨구멍으로 보이는 피렌체 시가지.

드디어 빛이 보인다. 500계단도 안되는 높이를 올라왔는데 출구가 이리도 반가울 줄이야. ㅋㅋ

돔 정상에서 피렌체를 360도 즐긴다.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단테, 마키아벨리가 묻혀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이 왼편으로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미켈란젤로 광장이 보인다.

두오모 종탑에 올라왔으니 듣지 않고는 내려갈 수 없는 음악. ^^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이 기원전 6세기에 생긴 #피에솔레 라는 곳이고 피렌체는 400년이 지난 기원전 2세기에 피에솔레의 식민도시로 생긴 것이라고 하니 한번 다녀올 일정이 가능할지 일정을 챙겨봐야겠다.

두오모 전망대보다 10미터 낮은 높이 82미터(지붕까지 85미터)의 조토의 종탑.

돔을 내려오면 출구쪽에 두오모 성당을 설계하고 건축한 캄비오(왼쪽)와 돔을 완성한 브루넬레스키 동상이 보인다. 돔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이 사뭇 진지하다.

새벽부터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시차 적응은 2일차가 가장 힘든법. 오후엔 숙소에 들어가서 쉬는걸로.

숙소에서 잘 쉬고 블로그에서 가장 많이 추천하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를 먹으러 나왔다. T-bone 스테이크와는 마케팅적으로 구별하는 이유가 뭔가 했더니 일단 사이즈가 크다. 사진에 보이는 고기의 양이 1.3키로. 운동선수가 아니고는 혼자 못먹는 2인분이다. 옐프와 구글 리뷰를 보고 평가가 제일 좋은 곳이라 찾아갔는데 고기가 좀 질기기도 하고 맛은 별로였다. 이러나 저러나 관광지 음식인데 무슨 기대를 했나 싶기도 하지만 웬지 피렌체 식당들의 마케팅에 속은 느낌이 살짝든다. 그래서 찾아봤다.

비스테카는 키아니나 소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사진을 찾아보니 어마어마한 덩치다. 세계에서 가장 덩치가 큰 종자로 큰 놈들은 키가 1.8미터~2.0미터는 된다. 그러니 티본 고기를 썰어도 그 양이 엄청날 것이고 그걸 작게 쪼개서 팔아가지고는 다 소진하지도 못할 판이다. 키아니나 사진을 보니 이탈리아가 가죽공예가 유명한 이유를 알겠다. 가죽이 흰색이니 어떤 색으로 염색을 하건 자유자재. 그러니 고기는 덤이지 싶다. 사실 이탈리아인들은 소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 그러니 관광객들이 먹어줘야하는 것.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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