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부여행 (메디치가의 뒤끝과 미켈란젤로)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기상, 이제 일정의 시작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직 성당이나 매장이 문을 열지 않아서 그것이 대략 난감할 따름.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 근처에 있는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기하학적 패턴과 아치형 입구가 화려하면서도 소박해 보이고 규모가 큰 데도 아담하게 느껴진다. 피렌체 오기전에 가장 궁금했던 성당의 파사드중에 하나. 르네상스 최초의 원근법을 적용한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아쉽게도 일정이 맞지 않아 내부 관람을 하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성당의 모습이 이처럼 전면부는 아름답게 측면과 후면은 검소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 특이한거다. 베드로성당도 건물 외부에 두오모만큼의 장식을 하지는 않았다.
도미니크 수도회 사람들이 지은 성당인데 이곳 성당에서 만든 장미수로 흑사병 치료제로 사용하였고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세계 최초의 약국인 셈이다. 마리아 데 메디치가 프랑스 앙리 4세와 결혼하러 사람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갈 때 이곳 약국에서도 장미수 만드는 인력이 같이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유럽 전역으로 전파 되었다.
부속건물의 담벼락. 어디서 많이 본 문양?. 파라오의 투탕카멘의 모습이 떠오른다.
투탕카멘은 파란색? 그럼 그냥 패턴이 비슷한 걸로. ^^
다음날 광장 뒤쪽 시외버스 터미날이 이 근처인 줄 알고 한참을 찾아다닌다. 버스 들어갈 출입구가 어디 있다고… ㅋㅋ 버스터미날은 산타마리아 누벨라 성당이 아니라 산타마리아 누벨라 기차역 근처에 있다.
서양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토가 설계한 종탑. 산 조반니 세례당이 제일 처음 지어졌고 두오모 성당이 1296년에 착공되어 1436년에 완공되는데 종탑은 그 사이 1334년에 착공하여 조토 사후 제자들에 의해 1359년에 종탑이 완성된다. 흰대리석을 기본으로 녹색과 벽돌색이 대비를 이뤄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두오모 성당과의 높이 비교 그림이 있어 한컷 담아둔다.
준공한지 660년 정도 지났는데 여전히 깔끔하다. 예로부터 이탈리아는 토목 건축 분야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그 길로 전쟁물자와 군인들이 이동한다. 전쟁물자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물과 와인. 로마군은 와인이 없으면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와인을 사랑한다. 전세계 와인 생산량이 1위 국기이면서 절반 이상을 국내에서 소비하는 와인흡입국. 5살때부터 와인에 사이다를 타서 애들한테 준다고 하니 와인 사랑은 세계 최고.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와인을 이상없이 수송해야하니 흠결없는 수송로가 필요했던 것. 그래서 로마가 점령한 도시는 항상 도로와 수로가 제일 먼저 갖춰진다.
종탑 내부 천정의 모습.
안전을 위하여 종을 따로 보관하고 있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온 사방이 철망이다. 물론 안전을 위한 조치이겠지만 이거슨 아니지… 핸드폰 카메라 렌즈는 철조망 사이로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일반 렌즈는 어림도 없다. 두오모 쿠폴라를 올라갔다 오신 분들은 조토의 종탑은 굳이 올라가지 않으셔도 될 듯.
조토의 종탑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면 바로옆에 산 조반니 세례당이 있다. 피렌체의 수호성인 성 요한의 이름에서 따온 팔각형의 세례당인데 조반니는 요한의 이탈리아어 표기. 내려오자마자 바로 들어가서 세례당 전면사진을 담지 않아서 첫날 찍어둔 사진을 찾아본다. 첫날 저녁에 16-35 렌즈로 찍은 사진인데 광각렌즈의 특성상 종탑 상층부가 1차 수정을 했음에도 왜곡이 남아 있다.
두오모 통합권으로 구매를 한 경우는 별도의 티켓 구매가 필요 없으니 두오모 통합권을 추천드린다. 쿠폴라 예약도 인터넷으로 한꺼번에 해결되기 때문.
세례당 입구 출입문의 위세가 대단하다. 성경의 주요 장면을 묘사한 문을 3개 만들었는데 남쪽문은 안드레아 피사노가 제작하였고 북쪽과 동쪽문은 로렌조 기베르티가 제작하였다. 입구를 들어가서 오른쪽에 세례당 본관이 있었으니 북쪽문으로 들어가고 남쪽문으로 나온 것. 그렇다면 사진의 이문도 기베르티가 제작한 문. 출구쪽은 나오면서 뒤돌아서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래저래 피사노의 의문의 1패(? ^^).
기베르티가 제작한 문을 보고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Porta del Paradiso)’라고 불러주면서 천국의 문이 되었다. 그전엔 하나의 몸짓? ㅎㅎ 그리고 천국의 문이 동쪽에 있는 것도 닫혀 있는 것도 묘하다. 단테의 신곡에 천국은 하늘에서 빛이 내리고 빛으로 가득하다고 되어 있으니 새벽 먼동에 어둠이 걷히고 아침의 태양이 힘차게 오르는 동쪽이 천국이라는 의미? 아무튼 이 문 하나 만드는데 28년이 걸렸으니 그냥 넘기기엔 좀 아쉽다.
성경의 주요장면 10개를 묘사했는데 기베르티 본인의 얼굴을 새겨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혼자 넣기 미안했는지 비슷하게 생긴 다른 분도 같이 넣었다. 그래도 일반적인 예술가들은 저렇게 뻔뻔하게 한가운데 본인의 얼굴을 넣지는 않는데 기베르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겠다. 이후에 브루넬레스키가 공동작업을 하지 못한다고 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ㅋㅋ
10가지 장면을 다 살피자니 지루하고 그냥 넘어가자니 허전하다. 그래서 딱 2 장면만 살펴보자. 위의 장면은 성경의 첫번째 장면인 천지창조. 아담과 이브를 묘사하고 있고 그 아래 장면은 노아의 방주. 술취한 노아의 모습인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도 등장한다. 10톤이 넘는 청동을 녹여서 문을 제작하고 그걸 조각했으니 그 열정과 정성이 놀라울 따름.
입구에 들어서니 천정과 벽면을 꽉 채운 작품들이 시선을 앞도한다. 비잔틴 양식이라고 하는 걸보니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피렌체 최초의 건축물이고 르네상스 초기 작품이라 그런지 중세 말기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4시간 정도를 돌아다녔더니 당이 땡긴다. 그래서 눈 앞에 보이는 젤라또 가게에 바로 들어왔는데 이번 이태리 여행중 최악의 젤라또에 걸려든 것. 젤라또를 팔면서 과일 스무디도 팔고 젤라또에 마카롱을 얹어파는 가게에선 절대로 맛있는 젤라또를 기대하지 마시라. 젤라또가 맛있으면 왜 마카롱을 얹어 먹으라고 권하겠는가? 암튼 비싸고 맛없는 최악의 젤라또라고 적어 놓는다. ^^
우피치 박물관 예약시간은 오후 1시. 그때까지 2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다. 구글맵에 물어보니 이동시간이 왕복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근교 피에솔레라는 곳으로 다녀오기로 일정을 변경하고 겁도없이 피렌체 시내버스 타기에 도전한다. 이번 시도는 오롯이 구글맵 덕분인데 현재 위치에서 버스노선 몇번을 타면 되는지, 버스는 언제 도착하는지, 심지어 버스 갈아타는 정보까지 알려주며, 몇 정거장을 가서 내리는지까지 알려주며 현재 위치를 보여주니 그야말로 친절한 가이드의 끝판왕이다. 고맙다 #구글맵.
이태리에서 버스 타실 때 이것 한가지만 챙기시면 된다. 버스표는 구입하면 언제든지 탈 수 있는 금액적힌 백지수표같은 상태. 탑승후 펀칭을 하면 그때부터 90분간 유효하다. 그러니 표를 구입할 때 왕복으로 2장을 구입해놓으면 편하다. 금액만 정해져있고 구간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90분간은 타고 내리고를 계속 반복해도 상관이 없다. 기차도 같은 시스템. 잊지 않고 펀칭만 해주면 된다. 표를 넣었는데 펀칭이 되지 않아 가끔 애를 먹이는데 경우가 있는데 그땐 표를 넣은 상태에서 약간 좌우로 움직이면 센서가 작동해서 펀칭이 된다. 버스 요금이 1.5 유로인데 펀칭하지 않을 경우 벌금이 100유로가 넘으니 잊지 마시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이 되면 건물 페인트도 마음대로 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건 좀… ㅋㅋ
산골마을에 어시장이 섰다. 광장 이름이 피아짜 델 메르카토 (시장의 광장)라고 하더니 이름이 제대로다. ^^ 마을 주민들이 기다렸다는 듯 다들 나오셔서 장을 본다. 초상권문제로 웬만하면 문제가 될만한 사진은 올리지 않는데 이분께서 활짝 웃어주신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사진을 내리기로 하고 일단 이분의 미소를 나누는 걸로. ^^
광장에서 바라본 피아솔레 주택가 모습. 장을 본 아저씨가 동행인 다른 분을 기다리고 있는 듯. 왜 이태리 남자들은 저런 비니를 써도 멋있는지… 그것참. ㅎㅎ
피에솔레는 기원전 9~8세기경에 에트루리아인에 의해 방어 요새로 건설되었고 피렌체는 600년 뒤 기원전 2세기에 피에솔레의 식민도시로 건설된다. 그러다보니 에트루리아인의 기원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서아시아의 리디아인들이 이주한 것이라는 설과 피렌체 지방의 토착민이었다는 설. 그나저나 2600년이나 되는 고대 유적지를 이렇게 걸어다니게 열어두다니… 열린 문은 밀고 들어가면 된다. 단, 입장료가 있으니 그냥 들어가지는 마시라. ㅋㅋ
기원전 에트루리아인들의 성벽의 흔적과 유물 그리고 고대 로마의 유물이 수목에 둘러 싸여 있다. 로마 원형 극장은 지금도 오페라 무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어제 두오모 꼭대기에서 봤던 종탑이 여기. 그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한 컷.
유적지를 보느라고 전망대를 잊으면 안된다. ㅎㅎ 광장에서보면 전망대 방향이라고 이정표가 있으니 따라가면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골목의 끝에 다다르자 시야가 툭~ 터지며 피렌체가 아르노강을 따라 길게 펼쳐진다. 이런 전망 덕분에 피렌체의 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역시 피렌체 풍경은 피에솔레 언덕이고 사진은 미켈란젤로 언덕.
피에솔레 구경을 마치고 #유로자전거나라 #우피치반일투어 모임장소에서 일행을 만나 미술관으로 입장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가이드없이 보고나오니 뭘 봤는지도 모르겠고 보고 난 후 남는 것도 없었다. 물론 크리스마스시즌이라 가이드투어가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설명없는 루브르는 전리품 보관소에 불과했다. 그 이후로는 박물관과 미술관은 반드시 가이드 투어다. ^^ 애들 엄마는 그래서 루브르는 무효라고 다시 보러가야한다고. 😂
수많은 인파와 검색대를 통과한 후 올라온 2층 회랑. 피렌체는 어딜가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흔적이 즐비하다. 이곳도 그중 하나.
우피치 미술관의 주인공 산드로 보티첼리. 방 사이즈만 해도 다빈치 방의 4배나 되며 전시된 작품수도 단연 으뜸이다. 더군다나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이란 작품에서 젖은 벽에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 기법을 거부하고 석고에 유채로 그리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하여 작품이 그의 생존중에 파손되는 비극이 발생. 이를 계기로 메디치의 후원이 완전히 끊겼으니 많은 작품을 남길 수도 없었을 것.
그림의 제목은 비너스의 탄생.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땅이 신 가이아 사이에서 인간이 탄생하는데 그 아들중 하나인 크로노스(시간의 신 크로노스와는 다르다. 헷갈리지 말자)가 폭행을 일삼는 우라노스를 제거하려는 가이아의 뜻에 동참하여 아버지의 생식기를 낫으로 잘라 바다속에 던져버린다. 바다속에 던져진 우라노스의 생식기에서 거품이 일어났고 그 거품에서 비너스가 탄생한다. 당시 유행하던 비너스는 2가지 자세가 있었는데 하나는 손으로 몸을 가리는 베누스 푸티카(겸손한 비너스)가 있고 또 하나는 베누스 아나디오메네 (바다에서 솟아나는 비너스)로 다소 관능적인 비너스의 자세. 모델이 모델이었던 만큼 보티첼리는 겸손한 비너스를 선택.
비너스의 주인공은 시모네타 베스푸치. 제노바 출신으로 마르코 베스푸치와 결혼하면서 피렌체로 오게 된다. 미스 피렌체 수준의 미모로 유부녀인데도 메디치 일가의 흠모를 받을 정도. 그 당시 베스푸치 패밀리는 나중에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아메리카 대륙에 이름을 올릴 때에도 메디치가와 연락을 할 만큼 세력이 막강했고 보티첼리는 베스푸치 패밀리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시모네타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짝사랑을 하게 되면서 이후 보티첼리가 그린 모든 그림에는 시모네타가 등장한다.
신화적 주제로 그린 최초의 작품 ‘라 프리마베라(봄)’. 그림을 읽는 순서가 오른쪽에서 왼쪽이라고 하는데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바람을 부는 방향도 그림 왼쪽이고 인물들의 자세도 다들 그림 왼쪽을 보고 있으니 그림 감상 순서가 그러한 까닭이 납득이 간다. 비너스가 가운데 서있고 제일 오른쪽에서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그 옆에서 피하려는 클로리스를 잡고 있고 클로리스는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중. 변신중인 대상 2가지를 동시에 그려넣은 것이 특이하다. 하기사 그것도 작가 마음. ㅎㅎ 왼쪽으로는 애욕, 순결,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삼미신이 있는데 가운데 순결의 여신이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듯한 표정으로 왼쪽의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쳐다보고 있다. 로렌초 메디치 조카 결혼선물로 제작한 것이어서 그런지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심지어는 큐피드까지 ㅋㅋ, 약간 아랫배가 나온 모습인데 순풍순풍 아기 많이 낳으라고 임신을 상징하는 모습을 그림에 넣었지 싶다.
꽃의 여신 플로라에 시모네타를 그려넣었는데 시모네타가 22살에 폐결핵으로 사망할 당시의 창백한 모습이라고 알려져있다. 안타까운 보티첼리는 시모네타가 폐결핵으로 사망했다고 비너스 어깨뒤로 오랜지나무 숲사이에 폐를 그려넣었다고하는데 다시 보니 그리 보이기도 한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프리마베라 작품에서 보티첼리가 그린 꽃의 묘사에 드린 공이 예사롭지 않다. 그 종류만해도 190가지가 넘는다고 하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꽃도 그려넣었다고하며 피렌체에 본사를 둔 구찌(GUCCI) 본사 디자인팀에서 프리마베라에 나오는 꽃과 식물을 아직도 참조하고 있을 정도.
보티첼리 방을 보고나서 다빈치 방으로 이동하기전 2층에서 잠시 밖을보니 베키오 회랑이 보인다. 로렌초 데 메디치와 함께 피렌체를 공동 통치하던 동생 쥴리아노 데 메디치가 두오모 성당에서 암살 당한 후 로렌초는 암살 공포증에 시달려서 우피치에서 강건너 피티궁으로 이동할때 개인 통로를 만들어서 이동한다. 사진에 보이는 기와지붕 2층이 메디치가의 비밀통로. 우피치는 오피스의 이탈리아어. 일은 우피치에서 하고 집은 강건너 피티궁이었으니 중간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2층 통로로 다닌 것. 인페르노라는 영화에서 소개되어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쥴리아노는 법적으로 미혼이었지만 서자 쥴리오 데 메디치를 두고 있었으며 쥴리오는 이후 교황 클레멘스 7세가 된다. 메디치가에서 배출한 교황이 3명. 쫄딱망한 교황한테 신용대출해줘서 그 신용으로 메디치 은행이 교황청의 공식은행이 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쥴리아노가 암살된 것도 교황 식스투스 4세가 보낸 자객 때문인데 식스투스 4세는 메디치한테 대출을 신청했는데 로렌초가 거절하자 앙갚음을 한 것이다. 알고보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돈 때문~~
동생이 암살당하고 나서 로렌초의 의뢰로 미켈란젤로가 쥴리아노의 조각상을 만들었는데 이를 본 로렌쵸가 실제와는 다르게 너무 잘 생기게 만든 것 아니냐고 묻자 미켈란젤로가 “괜찮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앞으로 이 얼굴로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했다는 뒷 이야기. ^^ 바로 그 흉상이 오늘날 미대 입시 석고데생의 단골모델인 쥴리앙. 비현실적 턱선의 원조 꽃미남.ㅋㅋ
이제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이다. 제목은 수태고지. 투시원근법과 대기원근법을 적용하여 그렸을 뿐만 아니라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는 왜곡기법까지 포함하고 있다. 의뢰를 받을 당시 이 그림은 올리베토 교회의 제단화로 좌측 상층부에 전시될 예정이어서 작품 감상의 공간적 왜곡까지 염두에 두고 그린 작품.
이정도 각도에서 아래에서 비스듬히 왼쪽 위를 보도록 의도된 작품이라고... 성모 마리아와 천사 가브리엘의 간격이 이제야 적당해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패널화 톤도 도니 (도니에게 준 동그란 그림이라는 의미) 성모 마리아, 성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를 그린 성가족(사그라다 파밀리아)화. 사그라다 파밀리아? 어디서 많이 들었다 싶어서 찾아보니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성당이 그것. 암튼 아는 만큼 보이고 그만큼만 들린다. ^^
재미있는 것은 도니가 주문을 하고나서 그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취소를 했다가 주변의 지인들이 그래도 미켈란젤로 그림인데 나중에 돈이 될테니 일단 완성해서 갖고 있으라고 하자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한다. 이에 미켈란젤로가 돈을 당초 주문금액의 2배로 줘야 다시 제작하겠다고 하여 예술가와 주문자의 갑을 관계가 바뀐 흔치 않은 케이스. 그림인데 오히려 조각같은 느낌인데다가 성모 마리아의 자세는 미켈란젤로가 좋아하는 라오콘의 군상에 나오는 뒤틀기자세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도니가 헷갈릴만도 하다. ㅋㅋ 어쨌거나 1506년에 이 그림 마치고 1508년부터 미켈란젤로는 그 유명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그리러 로마로 떠난다.
다비드 제작 당시 미켈란젤로는 피렌체 공화정이 수립되면서 로마로 쫓겨난 로렌초 메디치의 아들 피에로 데 메디치를 경계하라고 했는데 결국 메디치가(家)는 피렌체로 복귀한다. 그 후 메디치가(家)와 미켈란젤로의 어색한 동행이 이어지다가 미켈란젤로의 로마행으로 어색함은 일단락. 하지만 그 어색함이 우피치 미술관에는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에게 방을 따로 준 것도 아니고 더구나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없고 도니 패밀리의 요청을 받고 그린 성가족 그림 달랑하나 남아 있다.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 고상하고 우아하게 표현하려는 마음에 목과 손이 길고 가늘며 다리도 비정상적인 자세를 하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에 조화와 균형의 완벽함을 벗어나고자 시도했던 예술 양식이 매너리즘인데 이 그림이 그 화풍을 담고 있다. 매너리즘의 사전적 의미는 예술 창작에 있어서 늘 같은 수법을 되풀이하여 신선미나 독창성을 잃는 일로 타성이라고도 불린다. 매너리즘의 본래의 취지는 사라지고 달리 부정적 의미만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
매너리즘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다가 이후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 신고전주의와 아르누보라는 새로운 예술사조로 이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르네상스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있었다면 바로크 양식은 대항해시대의 자본, 로코코 양식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자본이 뒷받침되었고 신자본주의와 아르누보는 미국 자본이 뒷받침되었다는 견해가 있는데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옮겨놓는다.
가이드의 설명중에 목이 긴 성모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바로 이 부분. 일부 투명인간 버전인데 오른쪽 다리는 정상인데 왼쪽 다리는 반투명으로 뒤의 계단이 비친다. 마치 포토샵에서 레이어를 만들고 왼쪽 다리부분만 마스킹을 한 것 같다. 그 당시에 그런 걸 알았을리는 없고… ^^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이후 앵그르, 고야, 마네등 후에 누워있는 누드를 양산하는 촉매역할을 한다. 르네상스답게 이분도 헝겁 쪼가리 하나 걸치지 않고 있다. 😆
우피치에서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베키오 다리 입구가 보인다. 왼쪽 위가 2층 비밀통로.
미술관 집중탐구 4시간은 모든 이후 일정을 정리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힘들어서 간단한 저녁식사 후 집으로 갈 요량으로 집 앞에 있는 식당에서 파스타 주문하고나서 또한번 빡친다. 건파스타로 수제파스타 맛을 내려고 기교를 부린 것. 알덴테와는 다른 차원의 덜익힘. ㅋㅋ 이태리 식당에서 파스타를 취급하는 건 3가지. 건파스타, 생파스타, 수제파스타. 생파스타는 식자재업체에서 납품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정도만 해도 양반이다. 옐프나 구글에서 수제파스타라고 리뷰가 있으면 일단 합격.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인지 로컬 식당인지 구별하는 방법은 식당 입구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으면 관광객용 식당이고 이런저런 스티커와 축구팀 마크가 덕지덕지 붙어 있으면 로컬식당. 로컬은 맛은 보장하지만 음식주문이 영어로 가능할지는 미지수인게 단점이고 관광객용 식당은 맛은 없는 대신 영어 주문이 가능하다. 이번 이태리 여행에서 알았다. 불편한 건 참아도 맛없는 건 참기힘들다는 걸. ㅋㅋ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