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부여행 (시간이 멈춘 토스카나 시에나)
피렌체에 오게되면 누구나 한번쯤은 하게 되는 마지막날의 고민. 보지 못한 뮤지엄과 명소들을 둘러 볼 것인가 아니면 외곽으로 나갈 것인가. 고민도 잠시. 지난 이틀간의 아카데미아와 우피치로 충분히 르네상스를 만끽했는지 자연스레 외곽으로 구미가 당겨져서 시에나 당첨.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으로 가지 말고 기차역으로 곧장간다. ㅋㅋ 기차역을 바라보고 왼쪽편, 즉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으로 오시라. 그러면 간이 시외버스 터미날이 보인다.
기차를 타고갈까 생각을 했지만 시에나 기차역에서 걷기엔 경사가 많고 거기서 또 버스를 타야한다니 잠시 망설임. 여쭤본 분들 이구동성 버스 추천이다. 고민 끝.
근처에 아웃렛 몰이 있어서 그곳을 다녀오시는 분들도 많은지 버스가 만석이다.
시에나 왕복표를 달라고 하면 똑같은 표를 2장 준다. 어느 표를 쓰건 상관없으니 한장을 버스 탑승시 펀칭하면 된다.
시에나행 버스가 2가지가 있으니 꼭 직행버스 라피다를 타라고 하던데 오늘은 5번 6번 플랫폼에 9:10출발 라피다가 2대다. 일요일이라 노선을 조정했나보다. 여행은 이래서 즐겁다. 5번을 탈까 6번을 탈까. ㅋㅋ
버스는 정확히 9시 10분에 출발하였는데 사진 정보가 10시 24분인것을 보니 1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시에나 빌딩속에서 구글맵이 계속 뱅뱅 돌기때문에 중간 중간 이정표 확인은 필수.
좁은 길은 아닌데 좁아보이는 이유가 건물을 돌로 지어서 그런 것 같고 그나마 좁지 않은 이유는 건물 외부에 돌출된 구조물이 없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늘었다 줄었다 좁은 듯 좁지 않은 듯 시에나의 골목길이 참으로 묘(妙)하다. 피렌체와는 달리 건물의 육중함이 더 느껴지는 건 시간이 멈춰진 도시라는 편견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그나저나 지붕 처마라인이 낯설지가 않다.
이탈리아 10월 중순은 일교차가 심하다. 이곳 시에나는 그늘이 많아 패딩을 입어도 전혀 과하지 않다. 반바지 입은 이탈리아 남자때문에 현혹되지 마시라. ^^
계단을 내려가면 캄포 광장. 비가 오면 모두 이 곳으로 모인다고 한다. 그런데 하수구가 하나? 왜 굳이 분산시키지 않고 모았을까 궁금하다.
하수구가 있는 곳을 살펴보니 주말이라 행사한다고 잘도 가려놓았다. 😆 물이 흐르듯 시선도 흐르는 법이니 저 곳에 무대를 설치하면 시선집중이 따로 없겠지. 기왕에 흐름이야기가 나왔으니 시에나가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 한번 살벼보고 넘어가자. 나와라 구글어스.
3D지도를 보면 캄포근처에서 모여서 물이 흘러가도록 경사가 있고 그 오른쪽 아래를 보면 하수구 하나만으로도 물이 고이지 않고 충분히 빨리 빠지도록 낙차를 만들어서 펌프 효과를 만들어 놓았다. 과연(果然) 토목의 이탈리아. 고대 로마시절부터 별도의 동력없이 낙차만으로 수로교를 만들어 상수도 시설을 만들었던 노하우가 하수도에도 적용되는 모습. 믓지다.
가이아 분수 주변으로 관광객들이 모여있고 그 주변으로 식당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헤링본 방식으로 어찌나 잘 심어 놓았는지 튀어나온 돌 하나가 없다. 피렌체 두오모 쿠폴라도 이렇게 쌓을만큼 가장 안정적인 쌓기 방식중의 하나.
만자의 탑. 높이 102미터. 두오모 쿠폴라와 조토의 종탑을 연이어 올랐더니 평지에 대한 애정이 아직은 더 크다. 계단은 다음기회로 미룬다. ㅋㅋ 만자는 만자구아다니의 줄임말로 먹보(?)라는 의미. 종치기 별명이 만자라는데 그 종치기의 아픔이 느껴진다. 종은 매시간 쳐야하고 심지어 오후 1시엔 종 한번 치겠다고 500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오니 배가 고플밖에. 그래서 좀 먹었기로서니 사람들이 돈받은것 먹는데 다쓰는 먹보라고 놀린다. 직원 복리후생이 엉망이었던 거지 만자가 무슨 죄가 있냔 말이지. ㅋㅋ
캄포 광장을 떠나 두오모로 향하면서 뒤돌아 한컷.
그런데 다시보니 기술이 좋은 건 좋은 거고 풍수의 관점에선 아무리봐도 아니다. 토스카나는 우기(雨期)가 있는 지역이라 비가 올 땐 많이 온다. 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바로 맞아버리면 아무리 물이 잘 빠져나가도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흘러오는 물살을 보면 두려운 법. 왜 굳이 푸블리코 궁전을 저곳에 세웠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피렌체랑 기 싸움에서 진 것이 배부른 수탉이 늦게 울어서가 아니라 하수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뇌피셜 한마디에 아니라고 덤비지는 마시라. 😂
가게 오픈이 11시라 준비중이시다. 그림 도자기 색깔이 참 고운데 천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벽에 걸어놓으니 더 곱다. ㅋㅋ
중세의 고딕양식(전면부 상단)과 르네상스 양식(전면부 하단)이 공존하는 시에나 두오모 성당. 내부를 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잠시 고민. 하지만 피렌체 마지막 일정은 피렌체 야경으로 마무리해야한다는 생각과 가이드 없이 들어가서 보면 뭐가 보이겠냐는 생각이 의기투합. 망설임은 온데간데없이 인증샷만 남기고 두오모 내부와 오페라 박물관은 패스.
캄포 광장으로 다시 가서 점심을 할까하다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봤던 햄버거 가게를 시도해보기로 한다. 우연치 않은 시도였지만 햄버거는 대성공. 키아니나 소고기로 만든 패티가 입안에서 느껴지는 고급진 식감에 맥주까지 서빙하는 식당이었던 것. 맥주 버거… 자주 접하면 몸쓸 몸매를 만들어버리는 조합이긴 하지만 가끔 갈증나고 배고플 때는 가성비 최고의 찰떡 궁합이다. 한가지 더. 이 식당 메뉴 가격이 착하긴 하지만 아주 많이 착한 것은 아니니 참조하시라.
식사를 마치고 피렌체 가는 버스를 기다리니 휴일이라 그런지 배차 간격이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어나 있다. 1시간이 덤으로 생겼다. 시간이란 기다리면 버리는 것이고 움직이면 버는 것.
길 건너 맞은 편에 뜬금없는 대관람차. 대관람차가 있다는 것은 뭔가 볼만한 풍광이 있다는 것인데 손님이 아무도 없다. 이유가 있겠지 싶어 탑승은 하지 않고 풍광 찾으러 좀 더 움직여 보기로 한다.
성벽에 조각된 문양을 보니 여기가 포르테짜 메디치(메디치 성). 15세기까지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번성했고 십자군 원정의 통과지점이 되기도 했지만 하필 피렌체의 코시모 데 메디치가 가장 독이 올라 있을 시기에 경쟁을 하면서 시에나는 피사와 함께 코시모의 정계복귀 희생양이 된다. 그 당시 이미 한번 쫓겨 났다가 복귀한 상황이라 전쟁에선 무조건 이겨야했고 나아가 내부 세력을 외부로 결집시켜 영토를 확장해야만 했기 때문.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고 남긴거라 그런지 문양 참 크기도 하다. ㅎㅎ
1554년 마르시아노 전투에서 시에나를 굴복시킨 코시모는 1561년 한때 스페인 점령시절 성곽터였던 곳에 더 높게 성을 쌓으라고 지시하는데 시에나 시민들의 봉기를 차단하기 위한 군사시설. 이 때부터 시에나의 성장과 발전의 시계는 멈춘다.
시에나 시민들 반란 방어용 진지로 구축한 성이라 높이도 엄청나다. 그 덕분에 전망은 좋다. ^^
성벽에 올라서니 시에나 시가전경이 눈높이에 딱이다. 이 정도 풍광이면 1시간의 인저리타임에 얻은 동점골 수준. 😆
입장료도 없고 특별히 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없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편하게 쉬고 계절을 느끼고 산책도 할 수 있는 아주 조용한 곳. 물들어가는 나뭇잎, 붉은 벽돌의 성벽, 그리고 붉은 지붕의 집들의 가을 노래가 정겹다.
피렌체로 돌아오는 노선에는 2시간 동안 배차가 없어서 그랬는지 2층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2층 앞자리는 이미 다른 분들이 차지하여 그 뒤에서 추억사진 한장.
도착해서 짐 정리하고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맞이하러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이동. 이탈리안 철가방 딜리버루와 마차의 조합이 재밌다.
고개들어 광장을 살피니 저녁 노을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이미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차고.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는데 하늘에 구름도 꽉찼다. 오늘 석양은 아무래도 해가 모습을 드러낼 여지는 없다.
첫날 일출을 광장에서 봤으니 해질녘은 다리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애들 엄마의 직감을 믿고 베키오 다리 방향으로 턴(Turn). 펜은 칼보다 강하고, 여자의 육감은 남자의 확신보다 강한 법이니 믿어보자. 😅
비워야 채운다다더니 미켈란젤로 광장을 내려놓으니 아르노 강이 반겨준다. 강물에 비친 우피치 위로 배 하나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니 강건너 우피치의 한적한 멋짐을 바라보는 즐거움이란...
한발 더 뒤로 물러나면서 카메라 앵글을 좀 더 숙여서 물에 비친 우피치를 다 담았으면 더 좋았을뻔. 하여간 골프나 사진이나 머리를 들면 안된다. ^^
베키오 근처는 저녁 시간을 즐기는 인파로 활기가 넘친다.
피렌체에서 야경이 가장 예쁘다는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 터를 잡으니 때는 바야흐로 매직아워. 마침 보트 한대가 무대안으로 들어온다. 고맙구로 ^^
명경지수(明鏡止水)… 마법에 걸린 폰테 알라 카라야. 무슨 마법이냐고? 그거야 시간이 멈춘 듯한 마법이지 다른거 또 있는감? ㅎㅎ
과연(果然) 명불허전(名不虛傳)… 아르노강변의 끊김없는 풍광(Seamless Scenery). 베키오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구름이 두터운 것이 옥에 티이긴 하지만 이 정도의 풍광을 담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오늘 저녁은 복이 터진거다.
다리 위엔 엄청난 인파들로 넘쳐난다. 아듀 베키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매끈하고 인파도 드문 비아 데 토르나부오니 거리. 구찌와 페라가모 본사가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웬지 미쿡?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