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웨스트, 석양의 바다

키웨스트, 석양의 바다

Key West, Home of Sunset

운전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중간 중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의미가 있어 즐겁다. 둘다 앞에 태우고 뒷자리에서 주변을 살피는 재미가 솔솔하다. 덕분에 이런 사진도 남긴다.

키웨스트라고 해서 열쇠 모양으로 생긴 섬들이 많은 줄 알았다. 알고보니 원래 케이(Cay)라는 낮고 모래많은 산호초 섬을 부르는 말인데 케이(Key)라고 쓰기도 한다고... 그런데 미국애들이 그냥 미국식 발음으로 키라고 불러서 키가 된 것이다. 그런 섬들을 잇는 다리 42개를 넘으면 키웨스트에 도착한다.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까지 270킬로미터. 170마일. 왕복 2차선 국도를 이용해야하기에 속도를 내어달릴 수가 없다. 토요일이다보니 역시 차가 막힌다. 5시간을 달려 다행히도 저녁 선셋이 시작하기 전에 키웨스트 진입에 성공. 키웨스트에서 마이애미까지는 170마일인데 쿠바까지는 90마일이다. 쿠바 농담중에 90마일 수영하면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곳 멕시코만은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 할배가 잡은 청새치를 뜯어먹는 상어떼가 출몰하는 곳이기에 그건 전적으로 웃자고 하는 얘기일 뿐. ^^

일몰 전에 헤밍웨이가 머무르며 집필했던 집을 둘러 보려했다. 그런데 고맙게도 5시에 문을 닫아버렸다. 1인당 14불씩 줘가며 남의 집을 구경하는 것에 망설였을텐데 그런 고민을 덜어줘서 오히려 고맙다. 어쨌거나 수많은 마초적 명언을 남기며 한 시대를 풍미한 헤밍웨이 집 담벼락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저녁 노을을 맞이하러 이동한다.

석양을 맞이하기에 좋은 곳을 지도에서 찾다보니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지도를 보니 리틀 스위스? 카리브가 지척인 이곳에 리틀 스위스라니… 건물 지붕이 뾰족한 것이 눈도 없는 이곳에 웬 스위스풍 건축인가 했더니만 스위스 보석상과 시계상들이 전(廛)을 펼치고 있다. 멋진 저녁 노을로 낭만이 넘치고 넘치는 낭만에 지갑은 열린다. 스위스 상인들의 한판승. ㅎㅎ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선셋을 맞이하는 곳이 명당이지 싶어 자리를 그곳으로 이동한다.

지는 해를 맞이하는 자세가 참으로 가지가지다. 해변가 패티오에서 식사를 하면서 석양을 즐기는가 하면, 물위에서 제트 스키위에 앉아 석양을 즐기기도 한다. 석양은 언제 어디서나 정답.

키웨스트 노을의 시작. 일년중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는 플로리다의 스프링 시즌. 일부러 맞춘 것은 아니지만 때마침 맑은 하늘이다. 마이애미 도착하기 전날 비가 왔다고 하더니 맑은 하늘이 더 맑다. 황금빛 하늘이 펼쳐진다.

사람이 많아서 노을 사진을 제대로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자리를 옮긴다. 푸른 하늘, 황금빛 노을, 그리고 붉은 태양. 이 세박자를 고루 갖추고 하늘은 이미 점입가경(漸入佳境).

바다에는 요트가 떠 있고 때마침 저 멀리 물새가 떼를 지어 날아간다. 자연이 그려내는 최고의 걸작.

태양의 마지막 조각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순간 가슴 찌릿한 감동이 밀려온다. 저녁 노을의 장엄함은 10초 정도되는 이순간을 말하는 것임을 오늘에야 비로소 알겠다. 헤밍웨이도 이 석양을 보며 내일도 해가 뜬다고 외치면서 태양은 희망이라고 했을거다.

그래서 그런지 이 친구들은 태양이 수면아래로 모습을 감추자 박수를 치고 환호한다. 행복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이곳에선 어딜 둘러봐도 뭉크의 절규는 없다. 그 느낌을 제공한 노르웨이의 오슬로 피오르의 석양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황금빛 하늘이 서서히 푸른색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 블루아워.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로켓 추진체같기도 하고 아톰 발같기도 한 모습의 가로등이 눈에 들어온다.

해 저문 밤 하늘에 달은 더욱 빛나고… 때 맞춰 나타난 비행구름 하늘을 수놓는다.

어울리지 않을 듯 묘하게 어울리는 수은등 불빛과 저녁노을.

한낮에는 육안으로 쿠바가 보인다고 하는데 지금 이곳은 이미 시커먼 밤. 낮에는 사진을 찍겠다고 길게 줄을 지어 30분씩 기다린다고 한다.

왕복 10시간 동안의 운전이 헛되지 않고 풍성한 노을 사진으로 카메라 가득 담을 수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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