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즉변 (窮則變), 변즉통(變則通) 그리고 준비(準備)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하여 아시아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그때까지만해도 미국은 태평양 건너 중국과 한국으로부터의 입국만 통제하면 강건너 불구경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처음 확인되고 유럽 전역이 난리가 나면서 미국은 대서양 너머로부터 뒤통수를 맞게 된다. 부랴부랴 유럽으로부터의 입국을 금지했지만 이미 늦은 듯하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확진자가 나온 것이 1월 31일이니 50일 정도의 시간을 아무런 준비없이 그냥 보내버린 지금 미국은 아수라장.
7만톤급 항공모함 사이즈로 1000개의 병상을 갖춘 병원선을 태평양과 대서양에 각각 대기시켜 놓고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 천조국임을 과시하며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지만 음압시설이 없으니 코로나 바이러스랑 무슨 상관인지 모를 일이다.
미국 질병 관리본부의 홈페이지를 보면 마스크는 아프면 착용하라고 되어 있다. 부족할지 모르니 의사 간호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구입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유럽인들의 생활 습성상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니 (기침 감기로 아프면 외출하지 않으니 마스크가 필요가 없다) 재고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마스크 착용하고 1미터 떨어지기를 원칙으로 권유하는데 반해 미국은 마스크를 나눠 줄 수가 없으니 6피트(약 182센티미터) 떨어지라고 한다. 하지만 실내에서 마스크 없이 6피트는 안전거리가 아니다.
다급한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에게 오늘 친서를 보냈다. 트위터 잘 날리기로 유명한 트럼프. 아무런 트위터도 없었고 북한에서 친서를 받았다고 먼저 발표한다. 현재 북한의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에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이라는데 이 난리에 뜬금없다. 북한의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가 문제가 아니다. 도움을 받을 것이 있는 것이며 그건 바로 다름아닌 개성공단 제작 마스크. 하지만 미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니 오프 더 레코드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유럽과 같은 사태로 비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스크 착용인데 미국엔 마스크가 없고 미국이 필요한 마스크를 생산해서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개성공단인 것. 지켜보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지 싶다. 의외의 상황에서 북미 관계의 물꼬가 트일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자 미국 식료품 마켓의 외부 모습이다. 그냥 마켓으로 들어갈 수 없다. 줄을 서야한다. 일정 인원이 쇼핑을 하고 나와야 입장이 가능하다. 대기한다고 줄을 서 있는데 6피트 간격을 두고 줄을 선다. 처음엔 사재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사재기 할 물건도 없이 진열장은 텅비어 있다. 밖에 줄을 세우는 이유는 다름아닌 근무하는 직원이 없기 때문. 무인 계산대만 오픈했는데 그나마 근무하는 종업원들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불안한 이유다.
인터넷상에서 중국의 코로나 사태를 강건너 불구경하던 유럽의 상황이라며 올라온 영화의 장면이다. 의도된 눈사태인 줄 알았는데 실제처럼 다가오는 모습에 패닉이 되어 다들 급하게 피했는데 아빠는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치고 (각자도생하라는 유럽) 엄마는 애들을 안고 있다(나라에서 세세하게 챙기는 한국). 그 이후 전개되는 어색함과 갈등은 코로나 사태이후 지구별의 모습을 암시하는 듯하다.
가뜩이나 온라인 비지니스 때문에 오프라인 비지니스가 힘겨웠는데 이젠 그 여파가 쇼핑에서 다이닝까지 본격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캘리포니아에서 다이닝 식당은 영업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딜리버리와 투고를 제외한 모든 식당은 문을 닫으라고 주정부에서 말한다. 그랬더니 베버리힐즈의 고급 식당이 배달음식과 투고로 탈바꿈을 했다. 미쉘린 스타 수준의 식당이 배달음식이라니 말이 되냔 말이지.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미쉘린 아니라 미쉘린 할배가 와도 소용이 없을 만큼 달라도 아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쇼핑, 여행, 외식, 외출, 병원 등 집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비행태의 변화가 예상된다. 변화(變化)의 준비(準備)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꿔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꿈을 당하게 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변화를 맞이하게 되면 우린 그것을 봉변(逢變)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