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년 노스림에서 앤틸롭 캐년 홀스슈 벤드까지
2009년 여름 그랜드 캐년을 찾았고 그 때 이 곳은 사우스림과 노스림으로 나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우스림을 봤으니 언젠가는 노스림을 가보리라 마음 먹은 지 어언 12년. 오늘 내가 저곳에 간다.
노스림은 사우스림에 비해서 거리도 멀어서 중간에 1박을 해야하고 (물론 무리해서 9시간을 죽자고 달리면 못 갈거리도 아니다) 숙소도 노스림 로지 달랑 하나 있기는 한데 1년전에 예약이 끝난다. 날씨도 춥고 고약해서 1년에 6개월만 개장을 하는 곳이니 계획하실 때 참조하시라.
라스베가스 근처 메스퀴트에서 1박을 하고 아침부터 3시간 정도 달렸다. 노스림 입구 도착.
일단 노스림 로지에 위치한 관광 안내소부터 살핀다. 이 곳은 워낙 날씨관련 경고가 많아 별다른 경고가 없는지 확인하고 일정대로 즐기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정면에 보이는 로지 본관은 기념품가게와 식당이 있으며 왼편에 보이는 통나무집이 숙소로 사용된다. 이곳 로지 근처에선 생각보다 LTE가 잘 터진다.
국립공원 통나무집은 호텔같은 깔끔함보단 전원스러운 편안함이다.
이곳 노스림 로지 전망대는 사우스림에 비해 그랜드 캐년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며 멍때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캠핑장으로 와서 체크인을 한다. 노스림 캠프그라운드. 6개월전 예약을 통해 확보한 곳인데 예약시작 5분만에 솔드아웃. 낮에는 피톤치드가 뿜어나오고 밤에는 별이 쏟아지니 캠핑장 자체가 힐링이다.
캠핑장에 아무것도 없지만 딱 한가지 물을 갖춰 놓았다. 화성 탐사팀이 최우선적으로 찾고 있는 것도 물의 흔적이 아니던가. 지난해 8월 이 곳 캠핑장 문을 닫고 상수도 공사를 한 덕분에 생긴 소중한 수도꼭지.
짐을 풀자마자 브라이트 엔젤 포인트로 이동하니 눈 앞에 펼쳐진 브라이트 엔젤 캐년. 12년전 사우스림에서 볼 때는 신기하더니 이젠 정겹다. 사진 왼편 위쪽 귀퉁이엔 화산으로 생긴 지형 험프리 피크(Humphreys Peak)가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사우스림 전망대. 반갑구먼! 어디 한번 당겨보자.
200미리로 당기고 잘라서 확대해보니 전망대 안테나 타워가 보인다. 사우스림 확인 완료. 워낙 한낮의 빛반사가 심해서 라이트룸을 아무리 만져도 여기까지가 최선이다.
지도에서 확인하니 고작 2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눈에는 까마득해보여도 실상은 반백리.
브라이트 엔젤 포인트로 가는 길에 만난 케이블카 전망대…처럼 생긴 바위. 자세히 보니 전기줄을 아래에서 끌어 올린 것이 보인다. 도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절벽을 타고 올라 전기선을 연결했다. 아마도 그 덕에 LTE를 잘 쓰고 있지 싶다.
브라이트 엔젤 포인트에서 즐기는 캐년과 오자뷰트(Oza Butte)의 협연(協演) . 들어간 계곡이 있고 솟아 오른 뷰트가 있으니 완전한 풍경을 갖추었다. 브라이트 엔젤 포인트를 꼭 가봐야하는 이유다.
다음날 그랜드 캐년 최고의 일출을 제공한다는 황제포인트 (Point Imperial)로 이동한다. 여기선 캐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뷰트가 펼쳐진 모습이 군웅이 할거하는 듯 하다. 그런데 이름이 황제의 포인트? 서양 친구들이 좌청룡 우백호 풍수를 안다는 말인가? 이곳이 그랜드 캐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라서 그리 이름지은 듯 하지만 실상은 북쪽 가장 높은 포인트에서 남쪽을 바라다보는 포인트여서 전지적 황제시점을 제공하는 기가 막힌 일출 명당이다.
2009년 사우스림에서 찍은 일출 사진.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까꿍하는 일출 사진을 찍으면서 얼마나 실망을 했던지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눈높이보다 높은 지평선으로 일출을 본다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 어쩌면 제대로 된 그랜드캐년 일출을 찍기위해 이때부터 노스림을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앱을 열어 확인을 하니 과연(果然). 좌청룡 일출이다. 이런 일출은 안보고 넘어갈 수 없다. 이동시간 40분에 해뜨는 시각이 6시 30분이니 새벽 3시 50분에 캠핑장을 출발하면 넉넉하지 싶다. 물론 날씨는 하늘에 맡긴다.
그렇게 내일의 계획을 마무리하고 나니 앵무새를 닮은 녀석이 카메라에 들어온다. 저런 녀석들 덕분에 사막에서도 아름다움의 균형이 맞춰진다.
같은 시각 먹이 사냥에 여념이 없는 페레그린 팔콘, 송골매의 비행. 이렇게 활강 할때 보면 영락없는 스텔스 폭격기다.
낮엔 섭씨 40도가 넘어가는 탓에 캠핑장으로 와서 잠시 더위를 피한 후 해질녘 찾아온 노스림 로지 선셋 전망대. 다들 멋진 석양을 기다리는 두근거림이 표정에 역력하다.
이곳의 지평선도 눈높이보다 높구나. 하지만 오늘은 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 이 정도로 만족을 해야하지 싶다. 일찍 눈을 붙이고 내일의 일출을 준비한다.
새벽 어둠을 헤치고 달려와 맞이한 포인트 임페리얼. 안개가 낮게 깔리면 금상첨화이겠으나 그것까지 바라진 않는다. 28미리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는 일출을 찍느라 여념이 없어 아이폰 카메라를 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필요한 만큼 지출하고 얼마나 필요한지 잘 모르겠으면 돈을 더주고 좋은 것을 사라는 조언을 물품구매의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데 지금까지 후회한 적이 없다. 잘 모를땐 지름신 강림을 받아들이면 된다.
황제적 작가시점의 좌청룡 일출이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
70미리 렌즈는 놀면 뭐하나. 소나무에 걸린 일출을 보고 애국가 생각이 난다면 라떼는 말이지.
아무리 바빠도 가슴 벅찬 일출벅스 커피를 빼놓을 수는 없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났으니 벌써 3시간 넘게 카페인 결핍. 자고로 캠핑은 커피와 라면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다.
포인트 임페리얼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 이동하면 케이프 로얄(Cape Royal). 바로 옆에 돌출되어 있는 엔젤스 윈도우. 구멍난 바위는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차고 넘치게 봤으니 바위 구멍은 겸손하게 지나간다.
오히려 여기서 보이는 콜로라도강이 더 반갑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가? 오늘 한낮엔 섭씨 43도가 넘어간다고 하니 이정도면 반드시 대피해야하는 수준.
월트 디즈니의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닮은 녀석이 카메라에 잡혔다. 다람쥐를 닮은 듯하지만 꼬리는 쥐를 닮은 칩멍크.
다음날 이동하는 길가에서 만난 바이슨 무리. 옐로우스톤에서 보던 놈들보다 발육상태가 부실해 보인다. 아무래도 물이 부족하고 먹을 풀도 부족하지 싶다. 날도 더운데다 송아지를 낳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다 지쳐보여 안쓰럽다. 숲속에는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니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가는 도중에 만난 버밀리온 클리프 전경. 원래는 멀리서 보고마는 그런 곳은 아니다. 한걸음 다가가면 멋진 풍광을 보여주는 곳.
오프로드 차량을 이용하여 4시간 정도 정상을 달리면 이런 멋진 장면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요즈음 같은 시즌에는 대단한 용기와 준비가 필요하다. 왕복 8시간의 오프로드 차량 이동을 감수해야하고 살인적인 더위와도 맞서야한다. 꼭 보고 싶은 분들은 찬바람이 불면 찾으시는 것도 괜찮지 싶다.
노스림에서 2시간 30분 가량을 달려와서 콜로라도강을 건너면 페이지라는 작은 인디언 보호구역 마을에 도착한다. 인디언들은 왜 굳이 이런 곳에 땅을 달라고 했을까 새삼 궁금하다.
더워도 너무 덥다. 이상 고온현상으로 텍사스의 전기가 또 고장이 났다고 하고 아리조나와 네바다에선 산불이 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래서 이상고온주의보가 내려진 한낮에는 움직이지 않기로 하고 새벽을 이용하여 호스슈벤드(Horse Shoe Bend)로 이동한다. 예정에 없던 사막 일출을 보게 되니 이런 게 바로 여행의 묘미.
해가 뜨기도 전인데 다들 같은 마음인지 벌써 도착해서 삼삼오오 풍경을 즐기고 있다.
이곳이 바로 많은 사진가들을 설레게 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멋진 샷을 담기위해 고군분투하게 만드는 호스슈밴드(Horse Shoe Bend). 70-200미리 렌즈는 꺼낼 필요도 없을 만큼 가까운 거리인데 그 주위를 콜로라도강이 멋지게 둘러 흐른다. 28미리 카메라로도 담을 수 없을만큼 가깝다. 16미리 광각렌즈를 차에 두고 온 것이 아쉬운 순간, 아이폰을 꺼내들어 일단 광각으로 렌즈 조정하여 담았다. 최근에 새로 구입한 아이폰은 RAW 화질로 사진을 찍어주니 고맙고 해상도 올리는 프로그램에 한바퀴 돌리고나니 카메라 정보는 사라졌지만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을만큼 훌륭한 해상도를 가진 넉넉한 화각의 사진을 얻었다.
겨울엔 바위 언덕 뒤쪽으로 해가 떨어지니 멋진 선셋 사진을 얻을 수 있으니 참조하시라.
한국에도 경상북도 예천에 회룡포라는 강이 돌아흐르는 멋진 마을이 있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은 사진찍고 풍광 감상하고 먹거리까지 풍부하니 달리 금수강산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 페이지에선 뭘 먹으려해도 먹을 곳이 없다. 더군다나 아침 7시 문이 열린 곳이라고는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가 전부다. RV는 차가 높아 그곳을 통과할 수 없어 자동차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걸어서 주문을 해야했다.
예정대로라면 오후엔 인디언 보호구역인 저곳 앤티롭 캐년에 들어가서
이런 사진을 찍고 있어야하는데 코로나로 폐쇄된 이후 아직 재개장을 하지 않고 있다. 인디언 가이드의 인솔없이 개인적으로 출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니 달리 방도가 없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찾아가보리라 마음에 걸어둔다.
콜로라도강을 막아 댐을 만들면서 생긴 파월호수. 메마른 땅에 호수를 보니 화성으로 인류를 이주시킬 준비를 하는 일론머스크 생각이 난다. 괜히 물도 없는 화성에서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지구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이 널부러져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이 곳 주민들에겐 비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모래언덕. 멀쩡해 보여도 바닥 곳곳엔 시멘트와 돌멩이가 엉킨 곳이 많으니 반드시 워터슈즈를 착용하고 들어가셔야 한다.
물만 있다면 섭씨 40도 정도는 견딜만하다.
오늘은 카메라 삼각대가 파라솔 받침으로 열일중이다.